불경기를 맞아 미국인들의 생활태도가 점점 근검절약으로 바뀌고 있다. 돈이 돌지 않는 어려운 때에는 절약밖에 다른 방도가 없다. 돈이 없으니 돈을 못 쓰고, 앞날이 불안하니 돈을 못 쓰는 것이다. 불경기를 계기로 그동안 병적으로 깊어진 과소비 풍조가 개선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소비자들이 너무 ‘절약, 절약’ 하면 경제적 후유증이 심각하다는 사실을 일본이 잘 보여주고 있다.
‘잃어버린 10년’후 일본의 골칫거리
소비자들 구두쇠 전략이 디플레이션 초래
돈이 돌아야 경제가 돌면서 불황 타개
일본은 지난 199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심각한 경제적 어려움을 겪었다. 임금이 제자리 걸음을 걷고 주가가 떨어지면서 돈 잘 쓰던 소비자들은 구두쇠가 되었다. 그런데 지금 와서 이것이 일본 경제에 크나큰 족쇄가 되고 있다.
경제가 회복된 지 수년이 지났지만 일본에서는 잘 사는 가정들조차도 여전히 수도료 아끼느라 목욕한 물을 버리지 않고 세탁용으로 쓰고 있다. 경제가 활황이던 80년대 도쿄의 부유층들이 즐기던 위스키 판매는 절정기의 1/5로 떨어졌다. 그런가 하면 자동차에 대한 관심도 떨어져 1990년 이후 판매고가 절반으로 줄었다.
도쿄 교외 나카노에 사는 다키가사키 가족은 거기서 더 나가 1전, 2전을 아끼며 살고 있다. 저축이 꽤 되는 편인데도 이 가정의 주부 히로코 다키가사키는 채소 먹는 양을 줄일 정도이다. 한 주간 살림을 돌아봐서 채소를 너무 많이 먹었다 싶을 때면 긴축재정용 음식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양배추 스튜다.
“양배추 좀 넣고, 감자 좀 넣으면 무엇이든 만들 수가 있거든요”라고 다키가사키 부인(49)은 말한다. 장애인 시설에서 파트타임 일을 하고 있는 그는 남편이 거대 전자회사 푸지추에서 고소득 직종에 종사하고 있지만 그래도 “언제 목이 잘릴지 모른다”며 “정말로 훨씬 더 더 많이 저축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1990년대의 잃어버린 10년에서 일본은 벗어났다. 미국과 중국에 대한 수출 붐이 한 몫을 했다. 그래서 경제가 활성화했는데도 한번 놀란 소비자들은 돈 쓸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 2001년에서 2007년 사이 일인당 소비자 지출은 0.2%가 상승했을 뿐이다.
전 세계적 경제 불황으로 수출이 얼어붙자 일본 경제는 자유낙하 중이다. 국내 소비로 공백을 메워야 하지만 소비자들이 주머니를 열지 않는 것이다. 지난 2008년 4/4분기 일본 경제는 연평균으로 볼 때 12.7%가 줄어들어 1970년 대 오일 쇼크 이후 최대 하락폭을 기록했다.
“일본은 지나치게 수출 의존적이어서 해외 시장이 둔화되면 일본 경제는 흔들리기 시작한다”고 다이치 생명연구소의 경제학자인 히데오 쿠마노는 말한다.
“겉으로만 보면 일본은 1990년대의 잃어버린 10년에서 벗어났습니다. 하지만 사실은 일본이 제2의 잃어버린 10년을 맞고 있습니다 - 바로 잃어버린 소비의 시대이지요”
일본인들이 지출을 줄인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가장 큰 이유는 일반 근로자들의 봉급이 줄어든 것일 것이다. 사실 일본에서는 근년 기업들이 되살아나며 이윤이 증폭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런 모순적인 현상이 생긴 것은 토요타나 소니 같은 수출기업들이 공격적인 경비절감에 나선 결과이다. 미국 기업들과 마찬가지로 일본 기업들도 인건비 싼 한국이나 타이완 같은 신흥 경제국가 기업들과 경쟁을 하느라 피말리는 노력을 해야 했던 것이다.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기업들은 일자리를 줄이고 인건비를 줄이느라 상당부분의 노동력을 임시직으로 대체했다. 이들 비정규직 근로자는 일본 전체 노동력의 1/3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이런 가혹한 변화를 그대로 느끼는 것은 젊은 세대이다. 24세 이하 젊은 층 근로자들의 48%는 임시직 종사자들이다. 취업시장이 메말랐을 때 성년이 된 이들은 눈에 띄는 소비를 가능한 한 피하는 경향이다.
이들은 자동차에도 별로 관심이 없다. 지난해 니케이 경제신문이 실시한 설문조사에 의하면 20대 일본 남성중 자동차를 갖고 싶어 하는 사람은 25%에 불과하다. 2000년에는 48%가 자동차를 원했는데 이런 하락이 자동차 판매 부진으로 이어지고 있다.
한때 외제 패션상품을 갖고 싶어 어쩔 줄을 몰라 하던 젊은 여성들도 그런 소비욕구를 잃어버리고 있는 것 같다. 예를 들어 루이 비통은 2008년 일본 내 매출이 10% 떨어졌다고 보고했다.
젊은 층이 소박한 삶을 추구하는 추세이다.
일본의 고령 인구도 소비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전후 가파르게 치솟던 경제성장의 덕을 톡톡히 본 베이비붐 세대가 은퇴를 하면서 평생 저축한 돈을 풀지 않을 까 하는 것이 일본 기업들의 기대였다. 이들의 은퇴는 2007년 대대적으로 시작되었다. 그러나 기업들이 원하던 규모의 소비는 일어나지 않았다.
은퇴자들의 소비가 늘지 않는 것은 일본의 연금 시스템에 대한 불신이 광범위하게 퍼진 때문이라고 경제학자들은 진단한다. 세계에서 가장 급속히 고령화 사회로 진입하는 국가 중의 하나인 만큼 연금 시스템이 그 무게로 휘청거리고 있는 것이다.
이는 미국에도 좋은 경고가 될 수 있다. 주가 하락으로 근로자들의 401k가 날아가고 은퇴연금이 사라지고 있으며 소셜 시큐리티 시스템도 장기적으로 볼 때 지불능력이 있는지 의심스럽다.
도쿄의 주부인 나오코 마사키(52)는 “남편이 5년 후면 은퇴해서 걱정이 많다”고 말한다. 공무원인 그의 남편은 은퇴금을 상당히 많이 받을 것으로 기대되지만 그렇다고 안심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은퇴기금이 줄어들 수도 있는 데다 아직 결혼 안한 자녀가 둘이나 있으니 걱정이라는 것이다. “남편이 다시 취직을 해서 가능한 한 오래 일을 했으면 좋겠다”고 그는 말한다.
지난주 오바마 대통령이 서명한 것과 같은 경제부양프로그램들이 일본에서 실효를 거두지 못한 것은 디플레이션 때문이었다. 소비자들이 지출을 줄이면서 물가가 하락하고 임금도 하락하는 현상이다. 상품가격이 앞으로 더 내려갈 것이라는 기대에 소비자들이 물건을 사지 않는 것이 부분적 이유가 된다.
경제학자들은 일본 정부가 계획 중인 2조 엔(210억 달러) 현금 지급안도 디플레이션으로 방해를 받을 것으로 보고 있다. 소비자들이 추가로 생긴 돈을 써야 경기부양이 되는 데, 돈을 쥐고 있으면 장차 더 가치가 높아질 것이라는 생각에 쓰지 않고 저축을 하게 될 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미국의 많은 경제학자들과 정책입안자들도 비슷한 두려움에 사로 잡혀있다. 오바마 대통령의 수석 경제자문관인 로렌스 서머스 역시 “디플레이션이 경제가 직면한 진짜 위험”이라고 말한 바 있다.
<뉴욕 타임스 - 본사 특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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