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지 여러 날 지난 그의 집으로
청구서가 온다 책이 온다 전화가 온다
지금은 죽었으므로 전화를 받을 수 없습니다
삐 소리가 나면 메시지를 남겨주세요
반송되지 않는다
눈 없고 발 없는 우편물들이
바퀴로 발을 만들고 우편번호로 눈을 만들어 정확하게 달려온다
받을 사람 없다고 말할 입이 없어서
그냥 쌓인다 누군가가 뜯어봐 주기를 죽도록 기다리면서
무작정 쌓이기만 한다
말을 사정(射精)하고 싶어 근질근질한 혀들은
발육이 잘된 성욕을 참을 수 없어 꾸역꾸역 백지를 채우고
종이들은 제지공장에서 생산되자마자
오라는 곳은 없어도 갈 곳은 많은 책이 된다 서류양식이 된다
백골징포(白骨徵布)를 징수하던 조직적인 끈기가 글자들을 실어나른다
아무리 많이 쌓여도 반송할 줄 모르는
바보 햇빛과 바보 바람이
한가롭게 우편물 위를 어정거리고 있다
김기택(1957~)‘본인은 죽었으므로 우편물을 받을 수 없습니다’전문
사람이 가장 참기 어려운 건 말이다. 글이라는 것도 따지자면 말이 쏟아져 내린 것이고, 수많은 책들은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다. 오라는 곳은 없어도 갈 곳은 많은 책은 수취인도 죽고 없는 집으로 날아가 천덕꾸러기 신세가 된다. 죽은 사람은 죽은 사람, 우편물이 아무리 날아와 쌓여도 죽은 자는 그것을 반송할 수가 없다. 말의 힘을 생각하다가, 말조심 해야지 하다가, 살아있음이 대단하다는 생각을 문득 해본다.
한혜영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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