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 오바마 제44대 미국 대통령이 20일 취임했다. 그는 미국 역사상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라는 사실만으로도 새로운 역사를 쓴 셈이다. “시대가 영웅을 만든다”는 말처럼 앞으로 그가 펼칠 겸손과 헌신의 정치가 위기에 빠진 미국을 구하고, 보다 평화로운 세계를 만드는 데 기여하길 바란다.
오바마 민주당행정부의 대외정책이 아직까지 구체화되진 않았지만 대체로 ‘균형력’(power of balance)에 근거한 ‘강인하고 직접적인’ 외교를 펼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또 전임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일방주의’와 ‘하드파워’(특히 군사력)에 의지해 국제질서를 경영한 것과는 달리 ‘다자주의’와 ‘소프트파워’를 적극 활용할 것으로 전망된다.
지금 북한은 오바마 행정부의 출범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 특히 오바마 진영에서 나온 ‘불량국가 지도자와의 직접대화 추진’이나 ‘대북 특사 파견 검토’ 등의 언급에 고무돼 있다. 그래서 새해 벽두부터 북한은 한국을 제쳐놓고 미국과 ‘직거래’ 하겠다는 생각을 숨기지 않고 있다.
가령 얼마 전 신년 공동사설은 이명박 정부에 대해선 ‘파쇼 통치’ 운운하며 반정부투쟁을 선동한 반면 대미 비난을 자제하는 가운데 ‘조선반도 비핵화’ 실현을 거론하고 있다. 이 같은 태도는 ‘통미봉남’ 정책, 즉 대남관계에선 긴장 고조와 단계적 압박 전술, 남남갈등 조장을, 반면 대미관계에선 ‘관심 끌기’와 공세적 외교를 통한 적극적인 관계 개선 추진을 예고한다.
하지만 이 같은 이중전략이 통하지는 못할 것이다. 우선 북한은 ‘검토 가능’의 수준에서 나온 발언을 ‘장미 빛’ 시각으로 재단해선 안 된다.
그 대신 오바마 행정부가 제시한 검증 가능한 북핵 폐기 공약과 한미동맹 강화방침을 눈여겨봐야 한다. 미국의 새 지도부가 지난 6년간의 북핵 협상에서 보여준 북한의 불성실한 태도를 냉정하게 평가하는 점도 직시해야 한다.
더욱이 6자회담 협상 틀은 여전히 유용하다. 설령 오바마 행정부가 과감한 제안과 대북 접촉을 시도하더라도 한미 간의 긴밀한 협조 아래 추진할 것이다. 이러한 공동대처는 북한이 기도하는 ‘일방적 대미접근’과 ‘남한정부 배제 전략’을 무력화시킬 공산이 크다. 남북관계, 북핵문제 진전과 북미관계 개선이 병행, 선순환 구조를 가질 수밖에 없는 것도 엄연한 현실이다. 따라서 북한은 오판하지 말고 하루빨리 남북대화에 나와야 한다.
한편 이명박 대통령의 말처럼 ‘기다리는 것도 전략’이 될 수 있지만, 그렇다고 마냥 기다릴 수만은 없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조용히 시작해야 한다. 미국이 대북정책을 재검토하는 지금이 적기다.
무엇보다 한미 양국의 대북정책 결정자들이 한반도의 미래 비전을 공유하는 것이 절실하다. 이와 관련, 우리 정부가 북한의 ‘실질적 체제변화 유도’를 위한 중·장기 전략과 로드맵을 제시하고 적극 설득할 필요가 있다.
여기에는 비핵, 개방, 인권이 반드시 포함돼야 한다. 이들 과제는 국제사회가 바라는 것이며 미국적 가치에도 부합한다. 그럼에도 오바마측 인사들이 이란 핵문제보다 북핵문제를 낮게 평가한다거나 중동 국가와 미얀마 인권문제보다 북한 인권문제에 적은 관심을 보인다는 이야기는 이해하기 어렵다.
부시 행정부의 잘못은 안보문제에 집착(단선적 접근)하고 일관성 부족을 드러낸 점에 있다. 하지만 핵문제가 북한문제의 전부는 아니다. 이제는 비핵, 인권(수령 독재), 개방, 급변사태 등 북한문제에 대한 총체적 접근과 일관된 외교 노력이 요구된다. ‘미래 한미동맹 비전’도 이런 바탕 위에서 만들어져야 한다. 앞으로 한반도 평화 ‘관리’와 통일기반 ‘조성’을 위한 한국정부의 기민한 움직임을 기대한다.
제성호
외교부인권대사, 중앙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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