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으로 본 한국역사>라는 책이 있다. 함석헌 선생이 남긴 명저여서 한국의 지성인치고 이 책을 읽지 않은 사람이 별로 없다. 그런데 이 책은 원래 그 제목이 ‘성서적 입장에서 본 조선역사’였다. 한국의 역사를 성경의 눈으로 해석한 책이란 뜻이다.
그렇다면 오바마의 미국 대통령 취임이 ‘뜻으로 본 미국역사’라는 시각에서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맥아더 장군이 일본의 항복을 받은 뒤 행한 연설에서 “이 참혹한 세계적인 전쟁은 정치나 군사 문제이기보다는 신학의 문제”라고 언급했던 것처럼 오바마 대통령의 취임은 성경적 시각에서 본다면 무슨 뜻이 있을까?
흑인도 대통령이 될 수 있는 것은 미국의 건국정신이 성경에 기초했던 데 있다. 1776년 발표된 미국독립선언에서 건국 지도자들은 “모든 사람이 평등하게 창조되었다”는 ‘자명한 진리’를 선언했다.
그리고 조금 더 가까이는 에이브라함 링컨이 그 앞길을 닦아 놓았다. 그도 게티즈버그 연설에서 만민평등사상을 강조하면서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라는 민주주의 대원칙을 천명했다. 흑인 정부의 길을 열어 놓은 것이다. 그로부터 140 여 년이 지난 뒤 ‘백인에 의한 정부’가 마침내 뒤집어지고 말았다.
더 가까이는 킹 목사의 인권운동 덕택임을 누구나 다 안다. 그는 “원수를 사랑하라”는 기독교 신앙과 간디의 무저항/비폭력 방법으로 1960년대 민권운동의 기수가 되었다. 그 역시 “나에게는…… 노예의 후예들과 노예소유주의 자손들이 형제식탁에 앉을 수 있다는 꿈이 있습니다”라며 만민평등주의를 선언했다.
킹 목사와 함께 흑인민권운동을 주도한 기수는 말콤 엑스였다. 말콤 엑스는 분리주의에 기초하여 백인에 대한 증오심을 부추기며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의 운동방법을 채택했다. 그러나 그는 실패했다.
이와 반대로 킹 목사와 그를 따르는 흑인들은 용서와 사랑을 외쳤고 흑인신학(black theology)을 개발해 냈다. “예수는 흑인을 위하여 이 땅 위에 오셨다”는 선언이었다. 예수님은 억눌린 자를 해방시키기 위하여 오셨는데, 흑인들이 바로 억눌린 자들이라는 주장이다.
오바마가 대통령이 될 수 있었던 것은 경제위기와 공화당의 실정 덕택이지만 만민평등사상의 기독교적 토양이 크게 기여했다.
이렇게 해서 흑인 대통령이 마침내 탄생했다. 실상 오바마는 백인 적 흑인이고 흑인 적 백인인데도 세상 모든 사람들은 그를 흑인대통령이라고 의심 없이 믿고 있다. 그래서 피부색의 혁명이라고 평가한다.
그런데 지금 미국과 전 세계가 열광하는 것을 보면 오바마 취임은 단순히 대통령의 피부색이 바뀐 것만이 아니다. 오히려 ‘메시아’가 출현했다고 보아야 할 정도이다. 우선 그는 노예후손들인 미국 흑인들의 메시아다. 그리고 경제위기에 처한 온 세계와 미국, 심지어 남북한까지도 그가 메시아이기를 바라고 있으며 기독교와 이슬람교 역시 그가 화해의 메시아이기를 기대하고 있다.
그런데 두려운 마음도 있다. 처음에 열광하던 사람들은 메시아에게 실망하게 되고 나중에는 돌을 던져 죽이기도 한다. 참된 메시아 예수님도 처음에는 인기 만점이었다. 그러나 얼마 못 가서 많은 사람들이 낙심했고 결국 그를 십자가에 처형하지 않았던가. 게다가 메시아 스타일의 지도자였던 링컨이나 케네디 대통령, 킹 목사도 결국 비운으로 삶을 마쳤다.
그렇다면 오바마라는 흑인대통령이 출현한 뜻이 무엇일까? 압박과 설움을 받았던 만큼 억눌리고 억울한 사람들을 돌보며 고난을 함께 나누라는 십자가가 아닐까? 그래서 이 미국과 지구가 정의, 평화, 사랑의 나라가 되도록 섬김의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뜻일 것만 같다.
이정근
목사·유니온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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