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문을 꼭꼭 닫아걸고 있다
아래위로 문이 있는 여자
문을 열면
불이 켜지는 여자
문 밖이 뜨거울수록
더욱 단단하게 문을 닫고 사는 여자
몸속에 있는 것들이
혹여 녹거나 상할까 두려워
문을 꼭꼭 걸어 잠근 채
어둠을 키우고 사는 여자
많은 유효기간들을 담아 두고서
유효기간을 과신하는 여자
건드리지도 않았는데
윙하는 소리를 내며 경계하는 여자
24시간 풀가동되면서
차가워져 냉장고가 된 여자
식구들의 먹을 것을 대주느라
독한 여름을 견디는 여자
그녀가 잠그고 있는 것들은
언젠가는 모두 썩어 없어질 것들
코드를 뽑아버리면
없는 여자
안명옥 ‘냉장고’ 전문
냉장고를 의인화한 시다. 섹시하다고 생각하지만 폐쇄적이고, 독한 듯하지만 모질지도 못하고, 자신이 튼튼한 줄 알고 쉬지도 않고 일을 하지만 시나브로 녹슬어가는, 대부분의 여자들은 이러한 과정으로 늙어간다. 가족들을 위해서라면 전전긍긍, 무엇이든 참고 견디면서 고물 냉장고가 되어 가는 것이다. “코드를 뽑아버리면/ 없는 여자”는 세상의 모든 엄마들일 것 같다.
한혜영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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