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바람이 먼 길을 몰아오는 오후
고개를 넘어서 할아버지 한 분이
자전거를 타고 오시다가,
아차차, 세월처럼 가팔라서인지 꽈당, 넘어지셨네
어쩌나 우리 아버지 저 하늘에서 자전거를 타실까
허공을 밟듯 다니다가 저렇게 꽈당, 넘어지실까
헐레벌떡 달려가서 일으켜 세웠네 조심조심 찬 길바닥을 떼 내었네
슬며시 혈육처럼 기대어 오는 그 손에
자전거 다시 들려주고 절하고 돌아섰네
지난 세상 걱정하지 말고
옷자락 팔락팔락 미루나무 잎처럼, 잘 가시라고 빌었네
남은 세월의 고개를 넘듯
한 걸음 한 걸음
내딛다가 돌아보니
자전거와 한 몸이 되신 할아버지, 언덕길을 내려가시네
걷지도 못하던 다리에 생명을 불어넣으며 바퀴는 잘도 구르네
끌려왔던 세월도 다시 돌아가는 걸까
어깨 힘 씰룩씰룩, 저 성성한 백발
우리 아버지, 옛날처럼 자전거를 타고 가시네
석정호 ‘아버지, 자전거를 타시네’ 전문
황혼이거나 어스름이거나, 할아버지 한 분이 자전거를 타고 고개를 넘었을 것이다. 하늘나라에서 아버지가 자전거를 타는 거라고, 슬그머니 그리움이 고개를 들었을 법하다. 아버지 생각에 젖기 시작했을 때 하필 할아버지가 넘어진다. 화자는 헐레벌떡 달려간다.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함께 넘어졌기 때문이다. 돌아가신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마음이 짠하게 느껴진다.
한혜영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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