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 버냉키 연방 준비제도 이사회(FRB) 의장의 별명은 ‘헬리콥터 벤’이다. 미국 경제가 디플레이션에 빠질 위험에 관한 질문을 받자 “그럴 걱정은 안 해도 된다. 물가가 떨어지면 헬리콥터로 달러를 뿌려 해결할 수 있다”고 답했다 그런 이름을 얻게 됐다.
중앙은행이 통화량 조절을 통해 인플레와 디플레를 해결할 수 있다는 생각은 밀튼 프리드먼을 비롯한 통화주의자들의 공통된 신념이다. 인플레가 기승을 부릴 때는 금리를 올려 통화량을 줄이고 디플레 위험이 있을 때는 돈을 풀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인플레에 관한 부분은 폴 볼커 전 FRB 의장의 실험을 통해 입증됐다. 70년대 물가가 두 자리 수로 뛰자 금리 또한 두 자리 수로 올렸다. 그 결과 1980~1982년 두 차례의 심한 불황을 겪기는 했지만 물가는 안정됐다.
FRB는 16일 0.25%에서 0.5% 포인트 정도 내릴 것이란 예상을 깨고 목표 금리를 0%에서 0.25%로 책정하는 파격적인 금리 인하를 단행했다. 지난 달 미 소매 물가가 수십 년 래 최대 폭으로 떨어졌다는 뉴스가 말해주듯 지금 미국 경제가 당면한 최대 위협은 인플레가 아니라 디플레며 이를 막기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 밖에 볼 수 없다. 금리를 더 이상 내릴 수 없게 됨에 따라 FRB의 실탄이 바닥났다는 우려를 불식시키려는 듯 “FRB에게는 금리 인하 외에도 경기를 부양할 다른 수단이 있다”는 언급도 빼놓지 않았다.
사실 FRB는 무제한으로 화폐를 찍어낼 권한을 갖고 있다. 힘들게 인쇄기를 돌릴 필요도 없다. 연방 국채나 패니메 등 정부 지원 기관에서 발행한 채권을 사주기만 하면 된다. 채권 액수만큼의 돈이 정부나 지원 기관에 입금됐다는 사실만 FRB가 확인해주면 그 돈은 생겨나는 것이다. 신 말고 무에서 유를 창조할 수 있는 존재는 FRB뿐이라 해도 과언은 아니다.
지금까지도 FRB는 여러 방식으로 천문학적인 액수의 돈을 풀었다. 그러나 돈을 받은 은행들이 이를 기업에 빌려주는 대신 꼭꼭 금고 속에 챙겨두고 있어 돈이 돌지 않고 있는 것이다. FRB가 무제한 추가로 돈을 풀 각오를 하고 있다는 것을 은행들이 믿게 되면 신용 경색도 풀리리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생각이다. 오히려 일부에서는 이렇게 많은 돈을 풀어 경기가 회복 조짐을 보였을 때 통화량을 적절히 줄이지 못하면 심한 인플레가 올 것을 걱정하고 있다.
그러나 버냉키를 비롯한 당국자들의 낙관론에도 불구, 디플레 퇴치가 그리 쉽지 않을 것이란 비관론도 있다. 90년대 지금의 미국처럼 자산 버블붕괴를 경험한 일본도 금리를 0%로 내렸지만 아직도 경기 침체와 디플레의 위협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누구 말이 맞을지는 좀 더 시간을 두고 지켜보는 수밖에 없다. 버냉키가 옳다면 미국 경제는 내년 후반기 회복세를 보이겠지만 만에 하나 비관론자들이 옳다면 지금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길고 긴 불황이 불가피하다. 신이 버냉키의 손을 들어주도록 기도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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