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 후보의 당선과 민주당의 상하 양원 장악을 누구보다 반가워한 것은 미국 노조들과 디트로이트 자동차 회사들이었다. 오바마 당선자가 한미자유무역협정을 반대하게 된 배경에도 이들의 입김이 셌다. 보호무역의 경제적 입장이 약하지만, 정치세력의 역학관계란 항상 자기편을 봐주는 데서 시작하는 게 상례다.
미국 자동차 회사들이 결코 사라지지 않게 하겠다고 공언한 오바마 후보였다. 노조의 후원이 캠페인에 필요했던 만큼, 그는 분명히 자동차 회사들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앞장서겠다고 선언했다.
그런데 자동차 회사들의 구조법안이 생각만큼 빨리 움직이지 않는 이유가 무얼까. 새로운 여건에 맞는 장래에 대한 디트로이트의 플랜이 있어야 한다로 조금 물러선 배경에는, 여론이 좋지 않은 것도 한 가지 이유이지만, 종래와 다른 새로운 정치풍향이 있기 때문이다.
새로운 정치 환경은 공화-민주 양당 모두에 생긴 정치세력 때문이다.
우선 공화당 쪽은 자유경쟁의 원칙에 입각한 원래의 보수세력도 그렇지만 외국 자동차 회사들이 세워서 잘 운영하고 있는 미 현지공장들이 거의가 다 반노조 성향의 남부 주들에 위치하고 있다. 이런 주들은 외국차 회사들의 현지 공장들이 주민들을 고용하고 경제에 도움이 되는 만큼 디트로이트와는 반대의 입장이 될 수밖에 없다.
노조와 디트로이트의 친구라고 알고 있는 민주당도 엄청나게 변했다. 종래 중서부의 북쪽에 위치한 미시간, 일리노이 지역 출신들이 세력을 갖고 있던 민주당 의회 간부들의 자리가 이제는 캘리포니아를 포함한 서부 지역 출신 의원들에게로 많이 넘어갔다. 그런데 이들은 환경론자들의 입김에 많이 약한 이들이다.
예를 들어, 그동안 자동차 회사들의 후견인 노릇을 하던 막강한 하원 에너지-상업위원회의 존 딩걸 미시간 출신 위원장이 캘리포니아 출신의 헨리 왁스만 의원에게 그 자리를 뺏겼다. 그리고 하원의장 낸시 펠로시도 캘리포니아 출신이고, LA 출신의 하비에르 베세라가 민주당 하원 원내 부총무가 되었다. 네바다 주 출신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 해리 리드가 지난번 미시간 출신 의원들이 밀어붙이려던 250억달러 대출안건도 막아버렸다.
이들 서부지역 출신이면서 환경론자들에 우호적인 민주당 의원들은 디트로이트 3대 자동차회사들을 살려줄 정치적 이유가 별로 없다. 그리고 공화당의 남부 출신 의원들은 자기 출신주의 고용과 경제파급 효과를 생각해서 디트로이트 3사들보다는 차라리 도요타, 혼다, BMW, 기아 등 외국차의 현지 공장들 편에 서지 않을 수 없다.
이번 대통령 선거에서도 현지 자동차 공장들이 위치한 11개 주에서 7개 주가 매케인 쪽이었다. 거기다 8번째 인디애나도 간신히 오바마 후보에게 넘어간 주였다.
정치 현실이 이러니 외국차들의 현지공장이 있는 주들은 자유경쟁과 친 비즈니스 성향이 강한 공화당 쪽과 호흡이 잘 맞는다. 그리고 이들 현지공장을 가진 외국 자동차 회사들은 지난 수십년 동안 의회와의 관계유지를 참 현명하게 해왔다고 미디어에서는 평가하고 있다. 사실 공화당 편에서는 이제 미국 자동차 산업을 디트로이트와 동일시하지도 않을 만큼 세상이 엄청나게 변했다.
디트로이트 3사의 경영진들과 노조 모두가 이들 새로운 의회 세력들에게서 경원시 당하는 것은 당연하다. 비즈니스의 현실이, 그리고 그동안 이들이 해온 짓들을 생각하면 공정한 생각을 가진 많은 이들이 이들의 편을 들 수가 없게 되어버렸다.
그러나 일리노이 출신의 오바마 당선자가 결국은 심정적으로 디트로이트 편이니까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는 신년부터는 디트로이트 3사들의 형편에 좀 더 동정적인 정책들이 힘을 받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그러나 위에 말씀드린 정치현실 때문에 의회의 도움이 나오더라도 여러 가지 조건들이 무척 까다롭게 붙어서 나올 것으로 보인다.
이종열
페이스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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