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미 카터가 민주당 후보로 대선전에 출마했을 때 자주 인용한 지수가 있었다. 바로 고통지수였다.
1976년 여름 당시 고통지수는 13.57%. “국민들을 이렇게 어려움에 빠트린 당사자가 어떻게 또 다시 대통령이 되려고 하느냐”며 현직의 제럴드 포드 대통령을 맹공격한 덕분에 무명의 카터는 선거에서 승리했다.
하지만 4년 후 그가 재선에 도전할 당시 고통지수는 미역사상 최고 수준으로 치솟았다. 1980년 6월 고통지수는 21.98%. 고통지수는 그대로 카터의 발목을 잡았다.
“4년 전에 비해 사는 게 나아졌느냐?”는 로널드 레이건 공화당 후보의 물음에 유권자들은 미련 없이 카터에게서 등을 돌렸다.
주지사 경력이 고작이었던 젊은 빌 클린턴이 “문제는 경제야!”라고 외치며 조지 H.W. 부시 대통령을 현직에서 몰아낸 1992년 당시에도 고통지수는 높았다. 1989년부터 1992년까지 아버지 부시의 재임기간 평균 고통지수는 10.68%, 1990년 11월에는 12.47%까지 치솟았었다.
고통지수가 높으면 정권이 바뀌는 것은 거의 틀림없는 일이다. 사는 게 팍팍하면 국민들의 마음속에서 자연스럽게 치솟는 것이 “바꾸고 보자”는 심리이기 때문이다.
고통지수란 국민들이 일상의 삶 속에서 느끼는 경제적 체감도. 습도와 온도 같은 기상요소에 따라 우리가 느끼는 불쾌감을 불쾌지수로 표시하듯 주머니 사정에 따라 느껴지는 경제적 압박감을 수치로 나타낸 것이 불쾌지수이다.
린든 존슨 대통령의 경제고문이었던 경제학자 아서 오쿤이 1962년 고안한 경제지표로 물가상승률과 실업률을 합한 것이 고통지수이다. 예를 들어 2008년 9월 기준 미국의 실업률은 6.1%, 인플레이션율은 4.94%로 고통지수는 11.04%가 된다.
개개인이 느끼는 삶의 질이나 고통의 정도를 계량화해서 수치로 나타낸다는 것은 사실 불가능하다. 남들이 보기에는 가질 만큼 가지고도 한 푼이 무서워 벌벌 떠느라 여행 한번 못 가는 사람이 있는 가하면, 은행 잔고가 늘 바닥을 헤매도 느긋하게 하루하루를 자족하며 사는 사람이 있다. 같은 잣대를 대기에는 사람마다 주관적 느낌의 차이가 크다.
고통지수는 개개인의 ‘고통’의 지수라기보다는 사회 전반의 경제적 체감 고통을 측정하는 지표이다. 실업자가 늘어나고 물가가 뛰어오르면 하루하루 살아가는 게 힘겹고 불안해서 사회 분위기가 꽁꽁 얼어붙으면서 고통지수가 올라간다.
올 대선 결과도 11%를 넘어선 고통지수와 무관하지 않다. 부동산 시장이 무너지면서 곤두박질친 경제가 얼마나 더 내려가야 바닥을 칠 지 모두가 불안하다. 특히 심각한 것은 실업률이다. 올해 들어 일자리가 120만개가 사라졌다. 10월 한달 동안에 사라진 일자리만 24만개에 달하면서 실업률은 6.5%로 14년래 가장 높다.
더 기분 나쁜 것은 앞으로의 전망이다. 경제가 지금 추세대로 내리막길이면 내년 한해 동안 미국의 고용주들 중 1/4은 어떤 규모로든 감원을 할 것이라는 보고서가 있다. 경제적 엄동설한이 다가오고 있다. 고통지수가 얼마나 올라갈지 모두 마음의 준비를 해둬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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