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 인 이슈- 가이스너 뉴욕 연방준비은행 총재
세계 4위 투자은행 리먼브러더스의 유동성 위기로 뉴욕 증시가 폭락한 지난 12일 밤 30여명의 월가 최고 경영자들이 뉴욕 연준으로 불려나왔다. 이들을 호출한 장본인은 티모시 가이스너(47·사진) 뉴욕 연방은행준비 총재. 헨리 폴슨 재무장관, 벤 버냉키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 크리스토퍼 콕스 증권거래위원회(SEC) 위원장 등 미국 금융수뇌부 4인방이 모두 모인 이날 회의는 리먼의 장래에 대해 논의하는 자리.
FRB 2인자로 소방수·냉혹한 심판자 역할
유동성 공급 대가 “우리의 룰 따르라” 요구
메릴린치 매각·투자銀 지주사 전환등 압력
폴슨 장관은 리먼 처리 원칙으로 “더 이상의 구제금융은 없다”고 밝혔다. 이어 가이스너 총재는 부연 설명으로 2가지 시나리오를 제시했다. 첫 번째는 리먼의 질서 정연한 파산이고, 두 번째는 월가가 앞으로 스스로 자구책을 찾아야 한다는 것.
존 테인 메릴린치 회장은 ‘다음은 우리 차례’라는 것을 직감하고 리먼과 인수협상을 벌이던 케네스 루이스 회장에게 전화를 걸어 인수의사를 타진하게 된다. 토요일인 13일 리먼과 BoA의 인수협상이 결렬되자, 가이스너 총재를 비롯한 뉴욕 연준 간부들은 메릴린치를 강하게 압박했다. 아시아 시장이 열리는 일요일 저녁까지 협상을 종결지으라고.
메릴린치는 일요일인 14일 밤 긴급 이사회를 열고 BoA에 주당 29달러, 440억달러에 매각하기로 결정했고, 리먼은 이날 영국의 바클레이즈와의 협상마저 결렬되자 결국 이튿날 오전 뉴욕 남부법원에 파산보호를 신청했다.
미국 금융자본주의의 상징인 투자은행이 몰락하는 소용돌이에는 티모시 가이스너 뉴욕 연준 총재의 보이지 않는 ‘영향력’이 자리를 하고 있다.
미 언론들은 이를 ‘길잡이’(guidance)라고 점잖게 표현하지만, 한국식 잣대로는 영락없는 ‘관치금융’이다. 사태를 주시하던 뉴욕 연준은 개입 판단이 서자 신속하게 행동으로 옮겼고, 무서울 만큼 냉혹했다.
가이스너 총재는 지난 3월 베어스턴스 붕괴 즈음 앨런 슈워츠 베어스턴스 최고경영자(CEO)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회사를 48시간 내에 JP모건에 팔 것을 주문했다. 지난 21일 골드만삭스와 모건스탠리가 투자은행 간판을 떼고 상업은행(은행 지주회사)으로 전환하는데도 압력을 행사했다.
로이드 블랭크페인 골드만삭스 회장은 “쓰나미가 해변으로 몰려오면 올림픽 수영 선수든 어린 애든 모두 파고에 휩쓸린다”며 골드만삭스가 신용위기라는 허리케인 앞에 도매급으로 넘어가게 된 것을 탄식했지만, 뉴욕 연준은 무너지는 월가의 장벽(wall)을 곧추 세워야 할 숙명적 의무를 가지고 있다.
월가에서는 그를 ‘은둔의 막후 실력자’라고 부른다.
가이스너 총재는 언론은 물론 금융가에도 좀처럼 노출되지 않는다. 학자 출신의 벤 버냉키 FRB 의장이 통화 정책을 총괄한다면, FRB 2인자의 그는 금융위기를 진화하는 소방수 역할을 맡고 있다. 월가 시스템 위기를 막아야 할 때는 월가의 팔을 비트는(arm-twisting) 악역도 마다하지 않았다.
뉴욕 검찰총장이 경영진의 비리에 대해 단죄의 칼을 휘두른다면, 그는 월가 금융기관의 명줄을 쥐고 있다. 금융기관에 유동성을 공급하는 창구인 뉴욕 연준은 월가의 최종 대부자로서 금융기관을 살릴 수도, 반대로 죽일 수도 있는 것이다. 가이스너 총재는 월가의 든든한 수호자이면서도 냉혹한 심판자인 셈이다.
이와 관련 월스트릿 저널(WSJ)은 가이스너 총재가 월가에 던지는 메시지를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우리에게 금융기관이 필요하며, 그래서 구명줄을 던져준다. 그러나 구제를 받은 이상 우리의 룰을 따라야 한다” 룰을 지키지 않으면, 뉴욕 연준의 요구를 거절하면 곧 죽음을 의미한다는 섬뜩한 지적이다. 긴급 유동성을 제공 받았음에도 자구 노력과 매각협상을 미적됐던 리먼은 결국 파산이라는 최악의 사태로 내몰렸다.
그는 지난 2003년 42세의 젊은 나이에 제9대 뉴욕 연준 총재로 올랐다. 그가 일약 FRB의 2인자로 발탁된 것은 과거 재무부 관료 시절 아시아 외환위기 등 국제금융 위기를 수습한 경험이 밑거름 됐다는 것이 정설이다.
한국의 외환위기 당시 국제 금융담당 차관보였던 그는 한국의 단기채권의 만기를 연장하는 데도 깊숙이 개입했다. 그는 그 대가로 초강력 긴축정책과 탈규제로 대표되는 글로벌 스탠더드와 미국식 자유경쟁 논리 도입 등을 주문했다.
아시아 외환위기를 다룬 경험 덕에 FRB의 2인자로 오른 그가 투자은행에 긴급 유동성을 제공한 대가로 상업은행에 준하는 규제의 잣대를 들이대는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티모시 가이스너 약력
▲61년 출생
▲83년 다트머스대 아시아학 전공
▲85년 존스 홉킨스대 국제경제학 석사
▲88년 미 재무부 관료로 출발
▲98년 국제담당 차관
▲2001년 IMF 정책개발평가국장
▲2003년 9대 뉴욕 연준 총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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