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남전을 드라마틱하게 표현한 사진 중에 부상당한 미 해군 조종사를 월맹인들이 물에 뛰어들어 건져내는 사진이 있다. 북폭 중 샘미사일에 맞아 하노이 근처 트룩바치 호수에 추락한 미군조종사를 월맹청년 10여명이 끌어내는 장면이다.
이 미군 전투기 조종사가 바로 지금 미 공화당 대통령 후보인 존 매케인 상원의원이다. 그후 그는 5년 반 동안 ‘하노이 힐튼’으로 불리는 포로수용소에서 갖은 고문을 당해 지금도 걸음걸이가 좀 이상하고 손을 머리위로 뻗지 못하는 신체부자유 상태다.
월남전에서 포로가 된 미군이 많지만 그중에서도 매케인 소령은 가장 화제를 모았던 인물이다. 왜냐하면 해군제독인 매케인의 아버지가 월남주둔 해군총사령관이었기 때문이다. 월맹측은 자신들의 전쟁선의를 보이기 위해 매케인을 석방하려 했으나 매케인은 먼저 붙잡힌 미군부터 석방하라며 거절해 월남전의 영웅으로 떠올랐다.
매케인의 집안은 해군명문으로 유명하다. 그의 자서전 ‘내 선조들의 믿음’에 따르면 매케인의 할아버지는 2차 대전에서 태평양 항공모함을 지휘한 4성 제독이고 아버지도 잠수함장 출신의 4성 제독이다. 매케인의 아들 3형제도 현재 해군 조종사와 해병장교들이다.
누구의 말도 듣지 않는 독립자세와 몸에 배어있는 그의 반항정신은 의회에서도 알아줄 정도다. 더구나 그는 부자다. 돈에 관한한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는다. 재혼인 그의 부인 신디는 피닉스의 버드와이저 맥주 총판회사의 회장으로 1년에 500만 달러의 수입이 있고 메디칼센터를 2개나 운영하며 집을 7채나 소유하고 있는 재벌급이다.
그는 공화당의 이단자다. 그래서 신문기자들은 그를 ‘매브릭(Maverick) 맥케인’이라고 부른다. ‘매브릭’이라는 말은 텍사스 목장용어로 ‘낙인이 찍혀지지 않은 송아지 또는 소’를 의미하며 남들과 항상 다른 길을 걸어가는 정치인을 뜻한다. 그러나 또한 어디로 튈지 모르는 럭비공 같은 인물이라는 뜻도 지니고 있다. 그가 러닝메이트로 알래스카의 여성 주지사인 페일린을 지명한 것은 ‘매브릭’다운 선택이다. 낡은 공화당의 사고방식과 늙었다는 자신의 이미지를 보완하기 위해 내린 파격적인 결정이다. 그의 핸디캡은 부시와 나이다.
그러나 ‘매브릭’형은 참신한 면이 있는 반면 남과 의논하지 않고 혼자 달리는 스타일이기 때문에 중요한 결정에서 판단을 그르치기가 쉽다. 무명의 젊은 여성 정치인이 대통령 유고시 군을 지휘하는 부통령직을 맡는다는 것에 대해 고개를 갸우뚱하는 사람들이 많다.
매케인은 여러번 ‘매브릭’적인 실수를 들어냈다. 이라크 전쟁이 일어났을 때 “바그다드 국민들이 미군을 환영할 것이며 따라서 전쟁도 곧 끝날 것”이라고 발언 했었고 최근에는 부시를 지지하여 “필요하다면 미군은 이라크에 100년도 머물 수 있다”고 말했다. 지금 상황은 반대로 돌아가고 있다. 정직하지만 앞을 내다보는 눈이 약하다는 평을 듣는다.
매케인은 군인집안의 전통에 젖어있는 정치인이다. 애국심과 충성심을 집안의 가훈으로 삼고 있으며 그래서 자신의 이번 선거구호도 ‘나라 먼저(Country First)’다. 그는 기자회견에서 “전쟁에서 지는 것보다 선거에서 지는 것을 택하겠다”고 말할 정도로 전쟁지지론자다. 그러나 이는 변화를 요구하는 시대의 흐름에 어울리지 않는다. ‘매브릭’ 이미지를 빼면 매케인이 아니고 ‘매브릭’ 이미지를 유지하자니 대통령직에 어울리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매케인의 고민이다.
이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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