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러화 약세 따라 외국관광객 홍수사태
‘사재기 러시’에 토종 뉴요커들만 ‘주눅’
네긴 파사드는 영화 제작자이자 코미디언이다. 그녀가 살고 있는 곳은 뉴욕 맨해튼의 이스트 빌리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유럽에서 친구들이 왔다 하면 그녀를 보러 온 것이지 그녀의 아파트를 쇼핑백 임시 보관 창고로 사용하기 위해 연락을 한 게 아니었다.
파사드는 최근에 쇼핑 여행 차 런던에서 온 두 친구를 에스코트했다. 이들은 대당 3,000달러가 넘는 고성능 컴퓨터들을 사들였다. 그리고 수백달러짜리 메모리들도 여분으로 샀다. 그리고 이스트 밸리의 부티크와 다운타운 블루밍데일 백화점을 휩쓸고 다녔다. 저녁에는 이 두 영국 친구들은 다운타운 고급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고 최신 유행의 바에서 파티를 즐겼다. 돈이 얼마나 드는지는 상관치 않고.
이 영국 친구들은 TV 프로덕션에서 일하는 보통 사람들이다. 스타도 아니고, 백만장자도 아니다. 이런 그들이 뉴욕 맨해턴을 휘저으며 물 쓰듯 돈을 쓰고 있는 것이다.
올 여름 뉴욕은 외국 방문객 홍수사태를 맞았다. 외국 방문객 수는 아마도 기록을 세울 것이라는 게 관광당국자의 말이다. 자국의 화폐가 미국 달러화에 비해 강세를 보이고 있는 게 한 요인으로, 그 덕에 함부르크, 요코하마 등지의 중산층들도 뉴욕으로 몰려들어 그 화려한 뉴욕 스타일 의상을 사재기하면서, 또 밤이면 핫 레스토랑에, 나이트클럽 순회를 하고 있다. 그것도 아주 싼 값에.
이 외국인 군단의 대규모 침공사태를 뉴요커들은 엇갈리는 심정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불안정한 경제로 시 재정은 수십억달러의 적자를 볼 판이다. 이런 상황에서 외국 돈이 들어오는 것은 환영할 일이다. 그러나 속이 편치 않은 것도 사실이다. 적지 않은 뉴요커들은 스스로를 코스모폴리탄으로 자처해왔다. 국제주의자란 말이다. 그런데 외국인들이 대거 몰려와 뉴욕을 마치 유행상품을 파는 월마트인양 취급하는 것이다. 그래서 묘하게 일고 있는 게 일종의 테리톨리얼리즘이다.
“질투심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랜지 우가르의 말이다. 어퍼 웨스트사이드에서 온라인 광고세일 매니저로 일하고 있는 그녀의 솔직한 고백이다. “이탈리아에 놀러 가서 프라다 백을 12개 정도 사고 싶은 데 반대로 그들이 와서 마구 사재기를 하고 있으니 질투가 난다.” 이어지는 그녀의 말이다.
스티븐 숀펠트는 링컨 센터 부근에 사는 뉴요커다. 그의 직업은 인베스트먼트 뱅커. 그는 로칼 경제를 위해서는 외국 방문객의 물결은 환영해야 한다는 생각이라고 했다. 이는 그러나 어디까지나 이론이고, 외국인들이 평일에도 나다니며 쇼핑을 하고 사진을 찍으면서 브리프 케이스를 들고 일하러 가는 자신의 모습을 보는 게 별로 유쾌하지는 않다는 것이다. 마치 뉴요커들을 ‘멸종위기를 맞은 종’으로 쳐다보는 느낌이 들어서라는 것이다.
폴리 블리처는 미용잡지 에디터다. 그녀 역시 비슷한 심정이다. 유행하는 맨해턴의 고급 술집, 스파, 부티크, 백화점 등 한 때 그녀의 플레이그라운드로 생각했던 곳들이 외국인들로 넘쳐나고 있는 상황을 그녀는 전쟁에 비교했다. 물 쓰듯 돈을 쓰는 유럽인들에게 토종 뉴요커들이 밀려나는 국면의 전쟁으로.
바를 가던, 백화점을 가던 그녀는 항상 퍼스트 클래스 서비스에 익숙해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퍼스트 클래스위에 또 클래스가 있다는 걸 느낀다고 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유럽의 방문객들은 그 비싼 핸드백이니, 구두를 한, 두개 사는 것이 아니다. 커다란 쇼핑백에 가득 찰 정도로 사재기를 한다. 당연히 최상급의 서비스는 그들에게 돌아가는 것이다.
그 비싼 맨해턴에 살고 있는 뉴요커들 중 일부는 요즘 유럽에서 오는 친구들을 접대하기 위해 오버타임으로 일을 한다. 한 마디로 돈이 달려서다. 제시카 레는 인베스트먼트 뱅크에서 일한다. 그녀는 요즘 남의 애완견을 산보시키는 아르바이트를 한다. 외국인 친구들이 오는데 그들은 뉴욕의 최고급 레스토랑에, 바만 찾고 있기 때문이다.
제시카는 런던에서 온 친구에게 질투심이 느껴진다고 했다. 빈 수트케이스를 들고 왔다. 그리고는 그 큰 가방을 가을용 최신 의상으로 꽉 채웠다는 것이다. 그 상대적 박탈감을 그녀는 지난 해 월남에 가 근사한 식당에 10명의 친구를 초대해 한 사람당 20달러도 채 안들이고 최고의 요리를 즐겼던 것을 회상하면서 달랬다고 했다.
서머 관광객 수 사상 최대기록
불황 뉴욕시 경제에 큰 활력소
뉴욕을 반문하는 외국인 여행객수는 올 여름, 그러니까 6월에서, 7월, 8월 석 달 동안 사상 최대 기록이었던 지난해의 312만을 11만 8,000명 이상 초과할 것으로 뉴욕시 관계당국은 전망하고 있다.
다른 한편 유로화는 올 여름 들어 미 달러화에 비해 계속 기록적 강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 2년간 22%가 올랐고 지난 2001년 이후 달러화의 거의 곱절이 됐다. 일본의 엔화도 달러에 대해 거의 12%가 올랐다. 영국의 파운드화는 23%, 스위스 프랑화는 31%, 덴마크의 크로네화는 42%, 그리고 호주 달러는 45%나 각각 올랐다.
이 간은 자국 화폐의 강세에 힘입어 외국방문객들은 마치 백만장자라도 된 것 같은 기분으로 ‘큰 손’ 행세를 하고 있는 것이다.
뉴욕시 당국과 업주들은 외국인들의 이 같은 씀씀이에 반색을 하고 있다. 불황을 맞은 지역 경제에 큰 활력소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액세서리 전문인 웨스트 빌리지의 ‘EOS뉴욕’ 부티크의 경우 고객의 70%가 외국 관광객이라는 게 업소 측의 이야기다. 경기가 안 좋은 요즘 이들 외국 손님은 적지 않은 도움이 되는 게 사실이다.
팬 아시안 식당으로 유명한 ‘부다칸’의 경우 지난 4개월간 외국인 고객의 물결은 30% 가까이 증가, 인종 전시장을 방불케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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