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마다 물가 앙등… 화폐가치 급락
무가베, 권력독점 위해 새 통화 마구 찍어
전체 경제 ‘내폭 직전’… 국민 생활만 파탄
종이가 없어 돈을 찍지 못한다. 세계 최악의 인플레이션의 나라, 짐바브웨의 오늘날 현실이다.
‘피델리티 프린터스 & 리파이너스’는 짐바브웨 국영회사다, 이 회사는 다름 아닌 조폐공사로 로버트 무가베체제를 위해 끈임 없이 은행권을 인쇄했었다. 이 회사가 그런데 이달 들어 위기를 맞고 있다. 지폐용 특수 종이를 공급해주던 독일 회사가 물량공급 중단을 통보해온 것이다. 짐바브웨의 최근 대통령선거는 불법의, 사기성 선거라는 비판이 가중되면서 국제사회의 제재가 뒤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지폐발행 공정은 눈에 띄게 늦어졌다. 1,000명에 달하는 고용원 중 3분의2는 강제로 휴가를 떠났다. 하루 24시간 3교대 근무 조 중 2교대 조는 근무가 취소됐다. 그 결과가 즉각 나타났다. 거리에 현금위기가 닥쳐온 것이다.
“현금위기도 위기지만 두 주 후면 엄청난 재난에 직면할 것이다.” 한 ‘피델리티’ 스탭의 말이다. 외국기자와 이야기하는 것이 발각나면 처벌을 당한다. 때문에 익명을 요구한 이 스탭의 말이다. 두 주 후면 지폐를 찍을 종이가 바닥이 난다는 의미다.
‘피델리티 프린터스’는 무가베의 생명줄이다. 이 회사는 경찰, 군 정보기관 등 무가베 체제의 권력을 유지하는 데 필수불가결한 이 기관들의 돈 줄이다. 최근에는 과거 해방전선 베테란들과 젊은 민병대로 구성된 새로운 조직이 생겨났다. 이 조직은 무가베의 재선을 이끌도록 유권자들을 공포로 몰아넣는 전위부대다. 이 조직 운영에도 역시 막대한 돈이 든다. 이들의 돈 줄 역시 ‘피델리티 프린터스’다.
어떻게 돈을 대는가. 돈을 인쇄하는 거다. 그러나 생산성 증가 없이 돈을 마구 찍기만 하다 보니 뒤 따르는 게 하이퍼-인플레이션이다. 물가가 아침과 저녁으로 달라진다. 그래서 다시 고액권을 발행한다. 그 돈 역시 며칠 못가 휴지나 진배없이 되고 있는 것이다.
종이공급 위기도 위기지만 ‘피델리티 프린터스’ 내부에서 진짜 우려하는 것은 유럽의 은행권 테크놀로지 소프트웨어 라이선스가 취하되는 사태다. 무가베 체제에 대한 압력수단으로 여러 제재조치가 거론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소프트웨어는 무가베로서는 상당히 중요하다. 하이퍼-인플레이션으로 이미 발행한 지폐는 쓸모가 없어져가고 있다. 때문에 계속 지폐를 찍어 내야 하는데 다자인이 없으면 새 돈을 만들 수 없어서다.
‘피델리티 프린터스’의 내부사항은 수년 간 무가베 체제의 ‘탑 시크릿’ 중의 하나였다. 그러나 그 체제가 흔들리면서 한 때 불가능으로 여겨졌던 이 조폐공사의 내부사항정보가 밖으로 흘러나오고 있다.
무가베 체제의 심장박동 같은 존재인 이 회사 공장은 온통 소음과 잉크냄새로 진동하고 있다. 프린팅 머신들은 낡았다. 그리고 고장이 잦다. 고치려면 독일에서 스페어 파트가 와야 하는데 오지 않는다. 고용원들은 이런 상황에서 갖가지 프레셔에 시달리고 있다. 하이퍼- 인플레이션으로 봉급이 턱 없이 작다는 것도 그렇다. 거기다가 그나마 종이부족사태가 오래되면 직업도 잃을 판이다.
“돈을 계속 찍어대니까 인플레이션이 오고 있다는 걸 사람들은 알고 있다. 그러나 어쩌란 말인가. 이게 우리들이 해야만 하는 일이니.” 한 고용원의 푸념이다. 종이부족으로 그나마 지폐발행의 일도 요즘에는 줄어들었다. 그러자 뒤 따르는 게 실업에 대한 공포다. 종이가 모자라자 국내에서 조달했다. 그러나 국내업자는 벌써부터 물량을 대지 못하고 있다.
현금부족사태는 벌써 여러 가지 문제를 유발시키고 있다. 환전상들이 아우성이다. 이들의 주 수입은 해외로 나간 국민들이 보내는 외화를 바꾸어주면서 이익을 챙기는 것, 그러나 짐바브웨 달러의 가치가 시간마다 떨어지면서 엄청난 혼란을 겪고 있다.
최근 수 주 동안 독일의 종이공급이 중단되기 까지 짐바브웨 정부는 지폐발행을 부쩍 늘려 거리에는 새 지폐가 끈임 없이 나왔다. “그들은 모든 군부대에 지급하기 위해 돈을 마구 찍어댔다. 그 결과 인플레는 것 잡을 수 없이 진전돼 아무도 컨트롤 할 수 없게 됐다.” 한 블랙마켓 환전상의 지적이다.
하이퍼-인플레이션으로 짐바브웨 경제는 전체적으로 내폭상황을 맞고 있다. 공장들마다 버텨야 불과 수주라고 아우성이다. 일부 공장들은 이미 문을 닫았다. 상점들도 마찬가지다. 비명은 은행가에서도 들려오고 있다. 그 모든 사태의 주범은 분과 초를 다투며 뛰고 있는 물가다.
것 잡을 수없는 초고속 인플레가 가져온 경제적 위기는 대부분의 짐바브웨 국민에게 결국 한 가지 문제로 귀착된다. ‘무엇을 먹고 사는가’다. 버스요금이 한 달 봉급을 웃돈다. 식품을 비롯해 생필품 값은 시간 단위로 뛰고 있다. 거기다가 경제가 나빠지면서 직장을 잃은 사람이 한둘이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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