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버드나 MIT, 시카고 같은 일류대학에서 교편을 잡았던 사회과학 전공 교수들의 이력을 보면 재미있는 것이 있다. 크고 좋은 대학원의 박사학위들이 있으나 학부와 석사 과정을 보낸 학교들 중에 조그만 시골학교들이 꽤 있다는 점이다. 필자가 일생동안 만난 유명한 교수들 중 많은 이들이 자기 고향이라서, 아니면 ‘고교시절의 스윗하트가 있으니까’라는 이유로 시골고향이나 가까운 타운에 있는 대학을 다녔지만, 워낙 명석한 이들이라 뒷날 대성하게 되는 이력을 가졌다.
이 미국이라는 나라는 너무 커서, 좁은 한국에서처럼 명석하고 부지런한 모든 학생들이 전부 서울대학엘 가야하고 아파트에서도 층수를 갈라서 어디는 몇째 층이 더 좋고 하는 그런 ‘자로 재기’가 별로 심하지 않다. 물론 뉴욕의 유태인 부모들처럼 일류병이 든 사람들도 꽤 있으나 필자가 일생동안 본 주위의 미국인들은 생각이 급하거나 답답하지가 않은 게 보통이었다.
한국이나 이곳 한인타운에서 보이는 것 중 때때로 필자의 눈에 새롭게 보이는 것이 급하고 얕은 계산된 행동들이다. 관광버스에서 가장 빨리 타는 이들이 꼭 앞자리를 차지해야하고, 수퍼마켓 계산대에서 선착순을 하기위해 한사람은 카트를 담당해서 줄에서고 다른 한사람은 나머지 몇 가지를 더 사서 채우는 식이다.
보통 미국대학 캠퍼스에서 학교버스를 타면 먼저 탄 학생들이 뒷자리로 간다. 어디가 편하고 않고의 계산이 없어서가 아니라 그냥 그렇게 하 는 것이다. 그렇게 뒷자리에 앉아서도 즐겁다. 낄낄거린다. 작은 것들을 너무 따지지 않고, 그냥 쉽게 살아간다.
한국인들의 우수성을 항상 자부심으로 생각하는 필자도 요즘은 우리나라와 민족이 너무 작은 곳에서 적은 사이즈로 사는 것이 안타깝다고 느낄 때가 많아졌다. 그 작고 적은 사이즈가 우리의 한계가 되어버렸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미국 어느 주에서 촛불집회가 열렸다고, 거기에 사람들이 많이 참석했다고 그 누가 호들갑을 떨 것이라 생각하는가. 한국에서는 정부에서 하는 일들이 불만이면 그렇게 하는 것이고, 할일이 없어서 가도 좋고, 아이들 데리고 의식화교육을 조기에 시켜 투사로 만들고 장래 국회의원 시키고 싶은 어머니들이 가벼운 마음으로 촛불집회에 가는 것이다. 나라가 너무 좁으니 한 도시에서 촛불 들고 모인 대중들의 목소리가 너무 크게 들리고 매스컴에서 난리를 치는 것이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과학적 근거로 열을 올려 떠드는 본국시민들의 정서를 얼마나 많은 우리 미주 한인들이 심정적으로 동조하는가. 아무리 성난 얼굴로 위생문제를 떠들고 이론을 늘어놓아봤자, 밀도살로 잡은 개고기 못 먹게 한다고 민족정서 얘기하는 나라에서, 번갯불에 타죽을 확률 같은 광우병 우려로 많은 이들이 촛불 들고 모여드는 걱정을 우리가 정말 공감할 수 있는가.
이명박 정부도 그렇다. 잘못한 것이 많고 썩은 부자가 청와대와 내각에 많으면, 국민에게 용서를 비는 마음으로 촛불집회 그냥 두고 보는 것이다. 유모차 끄는 가정주부들도 많은 그런 촛불 집회 막는다고 컨테이너 장벽까지 동원한 걸 보면, “우리는 작은 사람들이요”하고 광고하는 것처럼 보인다. 젊은 전경들 고생시키지 말고 촛불집회 6 개월만 하게 두는 것이다. 실컷 하고 지겨워질 때까지 하게 두는 것이다. 청와대에 진출할까봐 막는다고? 배후가 있다고?
청와대 간다면 올 때까지 두고 보라. 청와대 유리창 몇 장 깨어지면 어떤가. 썩은 청와대 비서관 몇 명 ‘배후 있는’ 과격시위자들에게 얻어맞으면 큰일 날 것 같은가. 불법집회가 그런 정도까지 간다면 그때 가서 ‘법질서 유지차원’에서 혼을 내면 된다. 우파정부하려면 제대로 해야 한다. 이건 이것도 저것도 아니니까 우파국민들의 마음도 떠난 것이다.
시켜놓은 지 석 달 만에 경제 안 살렸다고 난리치고, 집권한 다음 달에 물가 오른 것 책임지라고 하고…이 모든 것들이 우리가 작은 나라, 좁은 곳, 적은 사이즈의 국민들이라 그런 것이 아닌가 싶어 이것을 보는 마음 한없이 슬퍼진다. 우리 좀 느긋하게 생각하고 살 수 없을까.
이종열
페이스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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