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대권후보로 결정된 다음날인 4일 아침 이스라엘 로비단체 모임에 연사로 초청 받은 버락 오바마가 연설을 하는 동안 장내는 뜨거운 열기에 휩싸였다. 특히 흑인과 유대인들이 함께 헤쳐 온 역사에 대해 언급했을 때 계속되던 박수소리는 최고조에 달했다. 자신의 생각을 솔직함과 함께 대단히 적절한 어휘로 표현해 내는 오바마의 연설에 참석자들은 감동 받은 표정들이었다. 흑인으로서는 최초로 대권후보가 됨으로써 새로운 역사를 쓴 오바마의 힘이 무엇인지 확인할 수 있는 순간이었다.
잘 알려져 있듯 일리노이의 주 하원의원이었던 오바마가 ‘벼락’처럼 일약 전국적인 스타로 떠오른 것은 2004년 7월 보스턴에서 열린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한 기조연설을 통해서였다. 연설 제목은 ‘담대한 희망’(The Audacity of Hope). 이 연설에서 그는 평범치 않았던 자신의 성장기를 들려주며 앞으로 미국이 실현해 나가야 할 이상에 대해 이야기했다. 전국무대 첫 연설이라곤 믿어지지 않을 정도의 침착함과 뚜렷한 메시지 전달능력은 일약 그를 전국적 인물로 만들었다.
힐러리라는 전통 브랜드를 누르고 오바마라는 신생 브랜드가 민주당원들의 최종 선택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상품 자체가 워낙 뛰어났기 때문이다. 그는 무엇보다도 상대방에게 영감을 안겨주는데 탁월하다. 그의 연설에 감동받는 공화당원들도 많을 정도니 말할 나위 없다.
워낙 다양한 요소로 이뤄진 출신배경 때문에 어필의 폭도 넓다. 인종과 경제적 배경은 마이너리티다. 그렇지만 최고 명문출신의 엘리트라는 사실은 백인 화이트칼러 계층에게 호감을 준다. 한마디로 인종과 계층, 그리고 이데올로기를 두루 아우를 수 있는 ‘크로스 오버’ 정치인이다.
흑인 최초의 대통령 후보라는 역사를 쓴 오바마가 내친 김에 첫 흑인 대통령이라는 또 하나의 역사를 만들어 나갈지 주목된다. 정치분석가들의 지적대로 민주당 예선이 순조롭게 마무리 됐더라면 최소 10% 포인트 이상의 차이로 공화당에 낙승할 수 있었던 대선이었음에도 지금 사정은 그리 녹록치 않다. 힐러리의 버티기로 심화된 당 내분의 상처를 하루속히 봉합하지 않으면 정권교체가 물 건너갈지도 모를 상황이다. 이 모든 것은 이제부터 오바마가 감당해야 할 몫이다.
지난해 나온 자서전 ‘담대한 희망’에서 오바마는 “일하고자 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생계를 꾸려갈 만한 일자리를 찾을 수 있고, 병들어도 파산하지 않으며 모든 어린이들이 제대로 교육받고 가난한 부모를 둔 아이들도 대학교육을 받을 수 있으며 범죄와 테러 피해를 입지 않고 오염되지 않은 자연에서 살아갈 수 있는 사회”를 꿈꾼다고 밝혔다.
그에게 이런 꿈을 실현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질지는 몇 개월 더 두고 봐야 할 일이지만 오바마는 이미 민주당 예선을 통해 ‘담대한 희망’을 우리 모두에게 보여 주었다. 비관적인 전망 속에서도 최선을 다해 소통하고 희망을 얘기하는 모습에서 유권자들의 마음은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작은 변화의 물꼬가 큰 흐름이 되면서 오바마 자신을 제외하고는 그 누구도 확신하지 못했던 일이 현실화 된 것이다.
오바마의 대권 후보 확정은 그것만으로도 미국 사회의 엄청난 변화를 상징한다. 또 그런 변화를 유발한 촉매제도 오바마였다. 자라나는 세대에게 ‘담대한 희망’의 가치를 얘기해 줄 수 있는 확실한 사례를 가지게 된 것만으로도 소수민족들에게는 새로운 자산이 생긴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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