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븐 스필버그의 영화 ‘인디아나 존스: 크리스털 해골’은 그냥 보면 재미없다. 페루 정글 원주민의 전설, 중세기 스페인의 남미 진출, 2차 대전 이후 공산주의와 민주주의 냉전 등의 배경을 모르고 보면 그저 순식간의 눈요기에 그친다.
지난달 BBC가 보도한 “크리스털 해골은 고대문명의 유물이 아니라, 회전 성형 판과 연마재가 사용된 근대 기술이 조작한 것”이라는 진품논란 뉴스까지 곁들이면 영화의 또 다른 맛을 볼 수 있다.
여기에, 인디아나 존스 교수 역할을 맡은 해리슨 포드가 일리노이주의 메인 고교를 거쳐 위스콘신의 리폰 대학에 진학, 여학생들을 만나기 위해 드라마 강의를 들은 적은 있지만 졸업은 못하고 중도하차 하는 전기(傳記)까지 더하면, 영화 한편으로 역사, 지리, 사회, 과학, 시사교양, 교육 분야를 두루두루 살피는 기회로 삼을 수 있다.
똑같은 물도 소가 마시면 우유가 되고 뱀이 마시면 독이 되듯, 똑같은 영화를 관람해도 어떤 학생에게는 시간 낭비로 그치고, 어떤 학생에게는 상상력을 자극해 새로운 동기유발과 활력소가 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영화를 단순한 오락의 일종으로 여긴다. 그러나 영화는 이성, 논리, 조직, 첨단기술, 아이디어, 감동, 마케팅 전략, 이데올로기 등을 지니고 끝없이 상상력을 자극하는 도구이며 문화생활에서 빼놓을 수 없는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졸업 후 사회에 진출하면 교과서에서 배운 삼각함수(또는 미적분)와 영화 중에 어느 것을 접할 기회가 더 많을까.
책 읽기도 마찬가지다. 사지선다형 문제의 정답을 찾는 것보다 중요한, 읽는 이의 생각과 반응을 자기 목소리로 표현하는 훈련은 뒷전인 교육을 거친 학생이 사교모임에서 수시로 튀어나오는 영화 이야기에 끼어 들 수 있을까.
캐나다의 커뮤니케이션 학자 마셜 맥루한은 현대사람이 ‘문자의 노예’로 살고 있다며 그것을 ‘구텐베르그 은하계의 소산물’로 표현한다.
구텐베르그의 인쇄기 발명 이전, 구어(口語) 문화시대에는 오관(五官)을 골고루 사용하는 전인(whole person) 형성이 가능했지만, 인쇄술 발달로 인해 시각에만 편중된 불균형적이고 조각난 인간을 양산하는 비극을 가져왔다.
이에, 맥루한은 멀티미디어의 표상인 영화가 과거의 오관 문화로 돌아가게 만들어 인간을 좀더 온전한 모습으로 되살릴 수 있는 기능을 가졌다고 역설한다.
부모와 학교는 자녀교육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고민하고, 학생들은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지를 알기 위해 수많은 책을 의지한다. ‘문자의 노예’로 머물러 있기보다 2시간 안에 방향타를 찾을 수 있는 1989년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Dead Poet Society)’를 향해 오관을 열어보자.
오직 명문대 진학을 목표로 하고, 후에 의료, 법률, 금융계열로 진출하여 부모가 정해준 길을 가야 하는 꼭두각시 생활에 익숙한 학생들에게 키팅 선생은 “교과서는 쓰레기다. 찢어 버려라. 책상 위에 올라가 다른 각도에서 사물을 보라”는 도전으로 그들의 틀에 박힌 사고구조를 근본적으로 해체한다.
세상의 직업이 의사, 변호사, 교수, 엔지니어 4개 밖에 없는 줄 아는 부모들이 강요하는 미래에 물음표를 던지고 ‘카르페 디엠(오늘을 즐겨라)’을 바탕으로 자조정신을 찾으라고 외치는 이 영화는 맥루한의 ‘온전한 인간’ 모습을 그리게 한다. 대학진학 요령과 출세방법을 제시하는 문자로 된 그 어느 것 보다 뛰어난 인생 GPS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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