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에 다니는 아들 덕분에 첨단 게임 이름도 외워야 하고 아이들의 드라마도 대화를 위해서 봐둬야 하고, 운동이란 운동도 ‘꾸림꾸림’ 보따리 들고서 쫓아다녀야 한다. 이것저것 배워야 하는 것 말고도, 아이의 문화적 욕구를 충족시켜 주느라고 그리고 ‘쿨’한 엄마가 되기 위해 바쁘기 그지없다.
지난 연후에도 손꼽아 기다리던 ‘인디애나 존스’라는 영화를 보기 위해 아침부터 북새통을 떨면서 표를 인터넷으로 예매하고 친구들의 젊은 엄마들과 불경기에 개스 값을 절약한답시고 모여서 10여명의 아이와 어른들이 신나게 출발했다.
주차 공간을 찾기가 연말 대목만 했지만, 극장의 안내서대로 30여 분전에 무사히 도착을 해보니 ‘인산인해‘를 이룬 극장 앞에서 아이들 놓칠까 봐 얼마나 긴장을 했는지 정신이 없었다. 우아하게(?) 자판기에서 예매한 표를 픽업하여 신기한 눈으로 바라보는 아이들에게 의기양양하게 나눠 주면서 들어선 극장 안은 우리를 다시 경악하게 만들었다.
스크린 바로 앞줄에서부터 맨 꼭대기까지 거의 빈틈없이 가득한 객석에서 우리를 위해 기다리고 있는 좌석은 없었다. 왜 이 곳의 영화관은 좌석 번호가 없는 것이란 말인가!
군데군데 하나 혹은 둘씩 떨어진 좌석으로 모두 마음을 비운 채 아이들 손을 잡고 중간부터 ‘공략’을 시작했다.
웃옷을 놓기도 하고 가방으로 ‘임자가 있음’을 무언중에 알리고 있는 사람들 틈에 우리 엄마들은 심심하게 앉아있는 사람들의 시선을 집중적으로 받으면서 헤집고 다니기 시작했다. 다가가면 선뜻 자리가 비었음을 알려주는 사람도 있었지만 대개는 갑자기 재미없는 광고에 집중한 듯한 표정으로 멋쩍어서인지 시선을 피하는 이가 많았다.
적어도 아이들이 친구와 함께 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교양 있게 “자리가 있습니까?”라고 묻는 우리에게 드디어 적당한 자리가 보였다. 한 남자의 왼 편에 한 자리가 비어있고 오른 편으로 두 자리가 비어 있었다. 와이프가 올 것이라고 하며 어느 쪽으로 앉을지 모르겠다나.
정삼각형의 거대한 몸매를 가진 와이프는 오른 편 두 자리에 남편 옆으로 앉는 것이었다. “미안하지만 이 아이들을 함께 앉히고 싶은데요, 자리를 한 칸 옆으로 앉으시겠어요?”라는 질문이 끝나기도 전에 고개를 흔들면서 “No way, I like this seat!”라고 아이들을 실망시키는 것이었다.
엄마하고는 못 앉아도 친구들과 함께 보고 싶은 아이들을 위해 구석으로 헤매고 다닌 끝에 무사히 영화를 볼 수는 있었지만 필자는 두 시간이 넘는 동안 스크린보다는 멀찌감치 양 옆으로 끝까지 비어 있는 좌석을 두고 나이든 두 남녀가 키득거리며 손을 잡고 신난다고 앉아 있는 모습을 보느라 속에서 불이 났다.
아이들에게 팝콘을 가져다주느라 사이사이 누비고 다녀본 결과, 앞좌석에 다리를 올려놓기 위해 거짓말을 한 사람들, 편한 공간을 위해 옆을 비워 놓은 사람들의 시선과 마주칠 때 필자의 시선이 결코 고울 수는 없었다. 빈자리를 보며, 바디랭귀지로 ‘What’s going on?’이라는 제스처를 할 때 계면쩍어하는 그들을 보면서 새삼 세상의 진실을 생각하게 되었다.
마침 화장실에서 줄을 서게 되었는데 너무도 가여운 표정으로 나타난 ‘정삼각형의 그녀’, 필자에게 애교 섞어 묻는 말 “Can I go in first? Emergency… please”.
미국판 달동네를 운전하다 보면 스탑 사인에 더욱 조심을 할 필요가 있다. 자신이 먼저 가야 한다고 예민하게 반응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고급 주택가에서는 거의 동시에 서더라도 먼저 가라고 손짓을 하지만 그렇지 못한 곳에서는 자칫 욕을 먹어 기분을 상하는 수가 있으므로 양보를 하는 편이다.
여유 있는 사람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큰일에는 욕심을 부리나 작은 것에는 너그럽다. 그러나 어려워서 마음까지 여유가 없는 사람들 중에는 눈앞에 보이는 작은 것에 욕심을 내느라 정작 잃어버리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사는 경우도 종종 있는 것 같다. 그녀에게 한 필자의 대답은 “No way!!”(Pay back time)이었다.
(213)365-8081
제이 권
<프리마 에스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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