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발걸음하기 편한 공간에 직접 찾아가는 공연 기획”
지난 22일과 23일 이스트빌리지의 라마마 극장에서 공연된 전위연극 ‘길 없는 길’에서 강만홍씨(사진)가 30분간 걸어가는 길은 거리상으로는 10여 미터에 불과하다. 흰 광목천이 깔려있는 ‘길’에는 돌과 검은신, 물이 담겨있는 항아리가 놓여있고 강씨는 이 단촐한 여정을 아주 힘겹게 천천히 진행한다. 간혹씩 나타나는 가뿐한 발짓이 그가 무용으로 단련된 전문 배우라는 것을 보여주지만 영화의 슬로우 모션을 연상케 할 정도로 느릿한 강씨의 몸짓(혹은 춤사위)은 너무나 힘겨워 보여 배우의 등에 엊혀있는 조그만 조약돌이 천근 바윗돌처럼 느껴질 정도다.
소박한 오브제들과 긴 시간을 요하는 짧은 동선은 배우가 걸어가는 길이 구도자의 길이라는 것을 어렵지 않게 짐작케 한다. 김기덕 감독의 작품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을 본 관객이라면 주인공이 돌을 지고 험한 산길을 오르는 마지막 장면을 연상했을 수도 있다. 이 영화
에서 김기덕 감독 자신이 연기를 맡았던 주인공의 고행길을 받춰졌던 음악이 명창 김영임의 ‘정선 아리랑’이었다면 ‘길 없는 길’에서는 흑인 영가 가수의 애절한 구음이 그 역할을 대신한다.
강씨는 ‘길 없는 길’을 반드시 구도의 길이나 해탈로 이르는 깨달음의 과정으로만 해석할 필요는 없다고 설명했다. “어떤 인생인들 힘들고 고난스럽지 않겠습니까. 다 자신만의 업을 가지고 끝까지 가야하는 거고 마치고 나면 그저 홀가분하게 물 한잔 마시고 뒤 한번 돌아보는 거지요.”
강씨는 천안태생으로 서울예대를 졸업하고 같은 학교 연극과 교수를 역임했다. 82년 인도에 건너가 차우(CHHAU)춤을 3년간 사사 했고 라커펠러 재단의 장학금으로 가더드 대학에서 연극을 공부했으며, 트리니티대학, UCLA, 대만국립예술대학에서 초빙교수를 했다. 이후 스위스, 독일,
그리스 등 전세계를 돌며 즉흥연기, 명상, 그리고 자신이 만든 몸 다스리기 등 가르치며 공연해왔다. 또한, 강만홍(몸짓),범주(달마치기),박찬수(목조각),임동창(피아노)이 어우러지는 한울타리 즉흥공연을 여러 차례 해왔으며 ‘초혼(INVOCATION)’을 무당 채희아와 함께 공연하기도 했다.
강씨는 그러나 30여년에 걸친 방랑을 이제 끝낼 생각이다. 이번 공연을 시작으로 앞으로는 뉴욕에서만 공연을 하며 자신의 연기 인생을 마무리 할 계획이다. 20년전 라마마 극단의 주역배우로 오이디프스, 디오니소스 등의 전위연극에 주연을 맡았기 때문에 계속 라마마 극장이 주 무대가 되겠지만 한인 관객과의 만남도 무척이나 바라고 있다. 강씨는 “생활이 바쁜 한인들이 오프브로드웨이에 굳이 나오기는 힘들겠지만 그래도 찾아 주시면 큰 힘이 된다”며 “한인 관객들이 발걸음 하기 편한 공간으로 직접 찾아가는 공연도 많이 기획하겠다”고 밝혔다.
<박원영 기자>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