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중반 미국에서 가장 선망 받던 미래형 도시는 LA 였다. LA를 중심으로 한 남가주에서 뭔가 새로운 것을 시작하면 전국의 도시들이 뒤따라 하곤 했다.
예를 들어 세계 최초로 모텔이 등장하고, 드라이브 인 뱅크가 만들어진 곳이 남가주이며 미국 문화의 상징처럼 되어 버린 패스트푸드 식당의 고향도 남가주이다. 맥도널드, 칼스 주니어, 잭 인 더 박스, 타코 벨은 모두 1950년대 전후해 남가주에서 처음 문을 열었다.
LA가 이처럼 미국의 도시 문화를 주도한 데는 한 가지 요인이 있었다. 자동차 사랑이었다. 주민들이 자동차를 너무 좋아해 모든 게 자동차 중심으로 만들어지다 보니 당시로서는 최첨단 문화가 된 것이었다.
1940년 기준, LA의 개인 소유 자동차 수는 100만대. 당시 41개주의 자동차를 모두 합친 것보다 많은 숫자였다. 타주 사람들이 와서 보면 ‘자동차 물결’이라고 입을 딱 벌릴 만 했다.
LA는 사실 자동차로 만들어진 도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20년에서 1940년 사이 남가주 는 인구가 거의 3배가 늘어날 만큼 신흥지역이었다.
석유산업과 영화산업이 번창하면서 일자리가 많다는 소문이 나자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중서부 중산층을 비롯, 전국에서 몰려든 숫자는 200만 정도. 남가주 인구의 80%가 타 지역 출신들이었다.
그런데 이들 대부분이 자동차를 타고 이주해왔다는 것이 새로운 현상으로 꼽혔다. 서민들이 자가용을 가질 만큼 자동차가 보편화했다는 말이었다. 이어 2차 대전이 터지고 남가주는 방위산업의 중심지가 되면서 경제는 날로 번창하고 경제적 여유는 자동차 문화로 이어졌다.
‘드라이브 인’이 가장 ‘쿨’한 단어여서 식당도 드라이브 인, 은행도 드라이브 인, 더 나아가서는 교회도 드라이브 인이 눈길을 끌었다. 오렌지카운티 수정교회의 로버트 슐러 목사가 그 선구자. 슐러 목사는 드라이브 인 극장을 빌려 매주 일요일 아침 드라이브 인 교회를 시작했다. “예배를 드립시다. 당신의 자가용 안에서…”라는 달콤한 슬로건에 교인들은 드라이브 인 교회로 몰려들었다.
LA의 자동차 문화는 그대로 미 전국으로 퍼지고, 이후 세계 각국으로 퍼지면서 자동차 없으면 꼼짝을 못하는 사회가 되었다. 가까운 거리도 도무지 걷지를 않고 차를 타는 것이 몸에 배어서 건강에 이상이 생길 정도이다.
비만, 고혈압, 당뇨 등 성인병은 자동차 문화와 무관하지 않다.
개솔린 값이 계속 치솟으면서 이 모든 습관들이 바뀔 모양이다. 개솔린 가격이 갤런 당 4달러를 넘어서자 운전을 망설이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출퇴근은 카풀이나 대중 교통수단을 알아보고 주말에는 꼼짝 안한다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자동차 한번 움직이면 돈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난 3월 기준, 미전국의 운전량은 전년 대비 4.3%가 줄었다. 반면 대중 교통수단 이용은 지난 해 2.1%가 늘어서 50년래 최고수준이다.
현재 전 세계 원유 생산량은 8,500만 배럴인데 반해 사용량은 8,700만 배럴이다. 매일 100만 배럴씩 모자라니 값은 오를 수밖에 없다. 거기에 맞춰 수입이 느는 행운이 없다면 지출을 줄이는 것이 정해진 수순이다.
걸을만한 거리는 걷고 같은 방향이면 카풀하며 버스노선 있는 데는 버스 타면서 ‘자동차 문화’ 이전 시대로 돌아가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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