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스트릿에서 칼 아이칸이라고 하면 적대합병으로 경영이 힘든 회사를 산 후 그걸 조각내어 다시 팔거나 경영을 바꾼 다음 주가를 올려 돈을 번 사람으로 유명하다. 쉽게 말씀드려서 영화 ‘프리티 우먼’에서 리처드 기어가 맡은 역의 주인공이 하던 일이다.
칼 아이칸이 최근 야후의 주식을 대량으로 사들였다. 13억달러 가량으로 5,000만주를 샀는데 물론 야후의 주가는 이런 움직임으로 하루에 5% 정도 올랐다. 그가 이 주식을 산 이유가 우리들의 관심을 끈다. 최근 야후를 사려는 마이크로소프트 (MS)의 오퍼를 야후의 이사회에서 거절한 이후에 나왔기 때문이다.
정보산업의 선두주자로 군림해온 MS는 장기 성장전략의 일환으로 올해 야후를 사려고 30%가 넘는 프리미엄을 붙여서 24달러 정도하던 야후주식을 31달러에 사려고 야후의 이사회에 오퍼를 냈었다. 그런데 야후의 이사회에서는 이런 소위 적대합병 의도에 대해 선뜻 응하기가 싫었다. 팔고 싶은 의도가 전혀 없는 건 아니지만 좀 과하게 40달러란 카운터 오퍼를 냈다.
협상과정에서 이런 좀 억지스런 오퍼를 계속 고집하는 야후의 이사회에 불만이 생긴 MS는 5월3일에 31달러 오퍼마저 철회해 버리고 돌아가 버렸다.
말도 안 되는 억지에 별로 더 이상 얘기할 관심이 없다는 식이었다.
이렇게 되자 회사 경영이 신통치 않아 주가가 마음에 안 드는 20달러대에 오래 머물러 불만이던 대다수의 주주들의 불만이 야후의 이사회에 쏟아지기 시작했다. 왜 좋은 값에 팔지 않아 우리에게 손해를 입히느냐는 항의가 매스컴을 통해 야후 이사회를 겨냥하기 시작했다. 몇 명의 변호사들은 지금 손해배상 소송을 준비하고 있을 정도로 주주들은 정말 분노했다. 그러자 입장이 곤란해 진 야후 이사회의 대답이 걸작이었다. “MS가 진짜 오퍼를 철회하고 떠나버릴 줄을 예상 못했다”
이때 칼 아이칸이 등장한 것이다. 불만 가득한 대다수 주주들과 여론을 등에 업고 프락시 싸움을 하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프락시 싸움이란 이 경우에는 마음에 안 드는 야후의 이사회를 몰아내고 회사를 좋은 값에 팔 새로운 이사회 명단을 낼 테니 대다수를 차지하는 바깥 주주들에게 주주 총회에서 칼 아이칸으로 표를 몰아달라는 것을 의미한다.
이 칼럼을 쓰는 날까지 야후에 생긴 일은 이쯤에서 정리하고자 한다. 실제 야후의 주식이 얼마에 팔리는지 MS에서 야후를 결국 살 것인지 아닌지는 우리 한인사회에서 별로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의 관심은 이 뉴스가 한인사회에 주는 미래의 경제 정의에 대한 의미에 있다.
우리 한인사회의 경제 정의는 동포들의 경제적 성장과 그 궤를 같이 한다. 한인사회 초창기에는 우리에게 경제 정의란 개념은 사치였다. 멀리 타국에 와서 뿌리를 내리려 발버둥치는 초기 이민자들은 먹고 사는 것이 너무나 절박해서 경제적인 정의로움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생각할 시간조차 없었다.
한인들의 경제 정의란 얼마 전까지만 해도 거래선에 대한 채무를 떼먹고 도망가는 이들의 부도덕, 한국에서 부도를 내거나 범법행위를 한 후 이곳으로 도망온 이들의 문제, 비즈니스 건물 내장공사 후 약속대로 돈 지불은 않고 버티는 강심장들, 상업광고에 만병통치로 허무맹랑한 약속을 하는 제약회사나 의료업의 판매상술에 대한 문제… 이런 것들이었다.
그러나 이제 한인사회의 경제 규모나 경제의 내용도 주류사회의 경제 실제와 별반 다르지 않은 시대가 왔음을 우리가 직시해야 한다. 정보산업 쪽은 아직 그 규모에서 야후나 MS의 얘기가 비현실적으로 들릴 정도로 우리의 주의를 끌지 못하지만, 주식공개가 이루어진 회사들에서는 칼 아이칸의 뉴스가 남의 일이 아님을 깨달아야 한다.
회사 경영을 잘해서 주주 모두가 이익을 고루 가질 때는 문제가 없으나, 경영 실패로 회사 주가가 많이 내려가서 적대적 합병의 위험이 커지고, 크고 작은 외부 투자자들의 불만이 가득할 때는, 우리 한인사회의 깨어 있는 경제 정의는 한인사회형 칼 아이칸의 등장을 기도하게 되지 않을까.
이종열
페이스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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