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일주일은 일년동안 가장 힘들었던 주 중의 하나였다. 12개월 된 딸아이가 예방 주사를 맞으면서 시작된 일이었다. 홍역, 이하선염, 풍진 예방을 위한 MMR 예방주사와 수두 예방주사를 맞았는데, 그날 밤부터 아이가 아프기 시작했다.
감기 기운이 있는 것처럼 재채기를 하고 콧물이 흐르더니 천천히 열이 오르기 시작했다. 열이 나고 몸이 아프니까 아기는 자꾸 안아 달라고 칭얼대고 새내기 부모인 아내와 나는 어쩔 줄을 몰라 쩔쩔매며 아기를 달랬다.
아기는 평소 잘 울지도 않고 혼자서도 잘 노는 아이였다. 간혹 칭얼거릴 때 ‘베이비 아인슈타인’ 비디오를 틀어주면 금방 기분이 좋아져서 즐겁게 춤을 추곤 했는데 이번에는 TV를 쳐다보지도 않는 것이었다. 안 그래도 예방주사가 드물게 어린이 자폐증의 원인이 될 수도 있다는 얘기를 들어서 걱정하던 참에 아기가 너무 아파하니 더욱 걱정을 하게 되었다.
아기가 아프면 아기 자신도 괴롭지만 아이를 돌보는 부모도 몹시 괴롭다.
우유, 과자, 장난감 등 우리가 줄 수 있는 것 모든 것을 주어도 싫다며 밀어 버리고 안아 달라고 보채니 아내와 나는 어찌 할 바를 몰랐다.
유아용 진통제를 먹이니 아기 기분이 조금 나아지는 것 같아 유모차에 태워 산책도 하고 따스한 물로 목욕도 시켜주며 될 수 있는 한 아기가 밤에 잠을 잘 잘 수 있도록 애를 썼다. 하지만 밤이 되면 아기는 더욱 칭얼거리고, 그런 아기를 업어서 간신히 재웠다. 그러나 잠이 들어 침대에 눕히면 바로 깨어 울곤 해서 거의 매일 밤 아기를 안고 의자에 앉아 밤을 새워야 했다.
이렇게 힘들어 하는 아기를 보고 있자니 옛날 부모님이 하시던 푸념이 내 입에서 절로 나왔다. “차라리 내가 아팠으면…”
이런 말이 내 입에서 나오리라고는 상상도 못 한 일이었다. 그저 흘려듣던 부모님의 애통한 심정이 나의 현실이 되어 버린 것이었다.
예방주사 후유증으로 보채는 아기를 돌보는 데도 이렇게 힘이 드는 데 정말 중한 병을 앓는 아기의 부모 심정은 어떨까 상상이 되지 않았다. 의학이 발달하지 않아 해열/진통제도 없던 옛날의 부모들, 혹은 가난한 나라의 부모들은 어떻게 아기들을 키웠을까?
열이 가라 않아 기분이 좋아진 아기는 다시 싱글벙글 웃고 신나는 음악을 들으면 춤을 춘다. 그런 아기를 보니 이제 마음이 놓인다. 키운 지 겨우 일 년밖에 안 되는, 우리 서로 만난지 일 년밖에 안 되는 아기가 어느새 내 삶에서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존재가 되어 버렸다.
아기는 장차 커서 이런 내 마음을 알까? 부모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을까? 지금의 나를 보면 아마도 모를 것이다.
우리 부부가 이 아기를 위해 얼마나 희생을 하는지 그 희생을 인정하고 고마워 할 줄 알까? 아마도 아닐 것이다. 아기가 바르게 클 수 있도록 할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하려는 우리의 노력을 아기는 알까? 아마도 모를 것이다.
내가 이제야 부모님의 심정을 이해하는 것 같이 내 딸도 자기 자신이 엄마가 되어서야 그 마음을 이해할 수 있으리라. 어버이날을 맞으며 새삼 부모님의 은혜에 감사를 드린다.
서재필
벨플라워 중학교 합창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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