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의 날’과 베트남 전쟁 - 전혀 연관성을 찾을 수 없는 이슈이다. 그런데 알고 보면 그 둘 사이에는 숨은 인연이 있다. ‘지구의 날’이 태어나는 데 결정적 아이디어를 제공한 것이 ‘베트남 전쟁’이었다.
위스콘신 출신의 게일로드 넬슨 연방상원의원(민)은 자연에 대해 관심이 많은 정치인이었다. 환경보호에 대한 개념자체가 없던 1960년대부터 그는 자연환경이 오염되어 가는 데 대해 깊은 우려를 갖고 있었다.
당시 미국은 대량 생산이 최선인 공장 굴뚝의 시대였다. 온갖 화학약품들이 개발되고 남용돼 그 찌꺼기가 공장폐수에 섞여 강이나 호수로 마구 흘러들어가고 DDT 등 살충제를 들판이 뿌옇도록 뿌리면서도 아무도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 즈음 강이나 호수로 흘러들어간 세제는 연간 38억 파운드. 호수나 강의 수면이 비누거품으로 부글부글 했다. 오염이 너무 심하다 보니 1970년대 어느 강에서는 불이 붙었을 정도였다.
하루가 다르게 오염되어가는 자연을 지키기 위해 넬슨 의원은 관련 법안들을 제안하고, 존 F. 케네디 대통령을 설득, 환경보존의 중요성을 알리는 전국 순방을 하게 했다. 하지만 당시만 해도 미디어들이 관심을 보이지 않아 별로 효과가 없었다.
“인류가 맞게 될 중대한 도전에 대해 어떻게 하면 미국이 잠에서 깨어 관심을 갖게 할까?” 고심하던 넬슨은 어느 날 베트남전쟁 반대집회 기사를 읽게 되었다. 반전시위를 위해 전국적으로 대학들이 토론회를 조직한다는 내용이었다.
기사를 읽던 넬슨에게 퍼뜩 떠오르는 아이디어가 있었다. 전국의 대학 캠퍼스를 동원해 ‘반전’을 한다면 ‘자연보호’라고 못할 것이 없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었다.
그는 즉시 ‘지구의 날’ 행사를 위한 기금모금에 들어갔다. 그리고는 전국 50개 주지사와 대도시 시장들에게 ‘지구의 날 선포’를 요청하는 편지를 보내고, 전국의 대학 신문들과 중고교및 초등학교 대상 잡지에 ‘지구의 날’ 칼럼을 기고했다.
그 결과 1970년 4월22일 열린 제1회 ‘지구의 날’ 행사는 대 성공이었다. 전국의 1만개 초중고교와 2,000개 대학 그리고 1,000개 커뮤니티가 동참, 참가인원이 2,000만 명에 달했다. 당시 뉴욕시에서는 존 린제이 시장이 피프스 애비뉴의 차량 통행을 막고 센트럴 팍에서 행사를 개최, 10만명이 참가했다. 이후 매년 이날이 ‘지구의 날’로 정해져 이제는 미국 뿐 아니라 전 세계적 행사가 되고 있다.
19세기의 자연주의자 헨리 데이빗 소로우는 인간이 날수 없는 것이 천만다행이라고 개탄했다. 인간이 날기 까지 했다면 땅에 하듯 하늘도 쓰레기장으로 만들어 버렸을 것이라는 말이다.
그런가 하면 60년대의 미국 학자 마셜 맥루헌은 “지구라는 우주선에 승객은 없다. 우리 모두가 승무원들이다”는 말을 했다. 우리 모두가 지구를 관리하고 정비할 책임이 있다는 말이다.
이제나마 인류가 환경에 눈을 돌린 것은 천만다행이다. 우리 후손들이 대대로 살 지구를 위해 우리가 해야 할 것은 기본적으로 3R(Reduce, Reuse, Recycle)이다. 덜 쓰고, 다시 쓰고, 재활용하는 것이다. 이런 습관이 몸에 밴다면 1년 365일이 ‘지구의 날’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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