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문의 역사는 오래 된다. 국가가 생긴 이래 근대에 이르기까지 고문이 행해지지 않은 나라는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고문을 합법적인 취조의 수단으로 명문화 해놓은 것은 로마인들이다. 로마에서 노예의 증언은 고문을 통해 얻어낸 진술에 한해 법적 효력을 인정받았다. 노예와 같이 하잘 것 없는 인간은 고통을 겪지 않고서는 진실을 말할 리 없다는 사고방식이 깔려 있다.
서양에서 가장 무자비한 고문 방법을 개발한 것은 아이러니컬하게도 ‘사랑의 종교’인 기독교다. ‘신의 개’를 자처한 도미니크 수도승들은 ‘팔을 뒤로 묶어 매달기’ ‘수레바퀴에 묶어 사지 잡아 다니기’ ‘강제로 물 먹이기’ 등 인간의 상상력을 총동원한 고문 기술을 고안해 냈다. 이단자의 영혼을 구원한다는 구실로 인간이 인간에 대해 얼마나 잔인해질 수 있는가를 유감없이 보여준 것이다.
이런 방식이 인간의 영혼 구원은 물론이고 진실을 밝히는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처음 주장한 사람의 하나는 몽테뉴다. 그는 ‘에세이’에서 “고문은 진실 규명의 수단이 아니라 인내 테스트”라며 “고통을 잘 견디는 사람은 끝내 진실을 말하지 않을 것이고 고통에 약한 사람은 여기서 벗어나기 위해 거짓말을 할 것이므로 고문으로는 진실을 밝혀내기 어렵다”고 썼다.
이같은 그의 생각은 계몽주의의 도래와 함께 많은 지식인들의 공감을 얻게 되며 18세기 체자레 베카리아가 쓴 ‘죄와 벌’에 집대성돼 대부분의 근대 국가에서 고문이 금지되기에 이른다. 유엔도 1948년 인권 선언을 통해 고문의 금지를 천명했고 세계 거의 모든 나라가 형식적으로는 이를 수용하고 있으나 아직까지도 세계 곳곳에서 공공연하게 자행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전시에 대통령에게는 고문을 허용할 수 있는 권한이 있다는 메모 전문이 공개돼 파문이 일고 있다. 2003년 법무부 고문으로 있던 존 유가 작성한 이 메모는 고문을 금지한 연방법은 알 카에다 같은 테러리스트 조직을 취조하는 군 조사관에게는 적용되지 않으며 심신을 교란시키기 위한 약물 투여도 무방하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메모가 작성된 지 9개월만에 법무부는 국방부에 더 이상 이를 취조 기준으로 삼지 말라고 통보했지만 국방부는 이 법률 판단에 따라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서 체포한 포로들을 심문한 뒤였다. 아부 그라이브와 관타나모 기지에서 있었던 수많은 포로 학대 사건이 이와 관련돼 있음은 물론이다.
무고한 인간의 생명을 해치는 것이 존재 목적인 테러 집단에게 신사적인 대접만을 해 줄 수 없다는 입장도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세계 유일의 수퍼파워라고 자랑하는 미국이 중세적인 고문을 버젓이 자행하고 있다는 사실은 받아들이기 어렵다. 더군다나 이 메모를 작성한 사람이 촉망받던 한인 2세라는 사실이 더욱 유감스럽다. 미국이 포로 심문에 대한 기준을 바로 세워 하루 속히 포로 학대국이라는 오명에서 벗어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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