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영업을 하는 50대 중반 정모씨. 그는 요즘 기분이 별로 좋지 않다. 서울에 임대용 다세대 주택을 갖고 있는 정씨는 관리도 힘들고 해서 웬만하면 팔 생각으로 있었는데 최근 원·달러 환율이 1달러에 1,000원대로 치솟으면서 매물로 선뜻 내 놓기 어려운 상황이 됐다. 머릿속으로 대충 따져 봐도 지금 판다면 환율이 낮았을 때보다 10만 달러 이상 손해 본다는 계산이 나오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다. 경제 살리기와 주가지수 3,000 시대를 약속한 이명박 대통령을 믿고 금년 초 한국 주식에도 조금 투자했는데 시황이 영 말이 아니다. 환율까지 고려하면 눈 깜짝할 사이에 3분의 1이 날아간 셈이다. 게다가 미국경제가 어려움에 빠지면서 지금 하고 있는 비즈니스 매출도 감소 추세가 뚜렷하다. 정씨는 태평양 양편의 경제 위기에 이중고를 겪고 있다.
원화 환율 급등으로 관광업계도 어려움을 호소한다. 한국의 한 대형 여행업체의 발표를 보니 올 1월중 이 업체를 통해 미국을 관광한 한국인은 1,400여명으로 지난해 1월의 1,700여명에 비해 크게 줄었다는 것이다. 물론 달러에 대해 약해진 원화 가치가 가장 큰 원인이다. 관광객들에 의존하는 한인 업소들이 어려워진 것은 당연하다.
환율은 한미 무비자 시대 특수를 기대하던 심리에도 찬물을 끼얹고 있다. 지금의 원화 약세가 여행 성수기까지 지속될 경우 여파가 얼마나 될지 벌써부터 걱정하는 표정들이다. 원화 가치가 떨어지면서 기러기 아빠들의 허리도 더욱 휘어지고 있다.
반면 원화 가치 하락을 재테크로 활용하려는 발 빠른 한인들도 눈에 띈다. 반도체 장비회사에 다니는 한 한인은 최근 한국에 있는 부친에게 5만달러를 송금했다. 지난 1998년 외환위기 때 환율이 800원에서 1,600원으로 폭등하면서 환차익을 본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또 다른 한인도 한국부동산에 투자하는 문제를 놓고 고민 중이다. 이 한인 역시 부동산 가격이 하락하고 환율이 급등했던 IMF 경제위기 당시 부동산을 사들여 2~3배의 이익을 남긴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환율을 이용한 재테크 학습효과의 결과이다.
환율은 두 얼굴을 갖고 있다. 환율의 변동은 항상 음과 양의 여파를 동반한다. 하지만 한인사회의 비즈니스 구조와 한국내 재산 보유 현황 등을 고려해 볼 때 환율은 떨어질 때 보다 오를 때 한인 경제에 좀 더 부담으로 작용한다고 볼 수 있다.
현재의 환율이 많은 한인들에게 당혹스런 것은 그동안 전문가들이 해 온 전망과 정반대로 움직이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말과 금년 초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환율이 지난해 평균 환율(929.20원)보다 낮은 910대가 될 것으로 내다 봤었다. 800원대를 내다 본 전문가들도 있었다. 한인들도 이런 전망에 의거해 투자와 거래를 했거나 계획했는데 환율이 정반대로 움직이고 있으니 당혹스러울 수 밖에 없다.
지금 미국 경제는 점차 수렁으로 빠져 들고 있다. 한국에서도 연일 경제위기론이 나오고 있다. 워낙 변수가 많아 금융인들이 ‘신의 영역’이라고 부르는 환율. 앞으로 어떤 움직임을 보일지 누구도 자신 있게 예측하기 힘들다. 미국과 한국 양쪽의 경제상황을 모두 살피고 판단해야 하는 한인들에게는 피로감이 밀려오는 계절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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