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26일 나는 역사적인 장면을 TV로 시청할 수 있었다. 뉴욕 필하모닉의 평양공연이 바로 그것이다. TV를 보는 내내 나는 말할 수 없는 감동을 느꼈다. 아름다운 음악이 주는 가슴 뭉클함과 더불어, 서구 오케스트라가 최초로 평양 무대에 섰다는 사실까지 더해졌기 때문이다.
그 공연을 보며 나는 또 다른 감동의 주인공을 만날 수 있었다. 지휘자 즉 마에스트로(maestro) 로린 마젤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평양 공연장의 긴장된 분위기에서도 전혀 주눅 들지 않고 부드러웠던 그의 미소와 무표정한 평양 관객들을 웃게 만든 그의 여유로운 농담, 특히 어렵게 배웠을 서툰 한국말로 “좋은 시간 되세요”라고 한 멘트는 전 세계에 있는 한인들을 향한 감동의 선물이었다.
그리고 지휘 내내 보여주었던 그의 부드러운 카리스마는 음악의 참 경지에 오른 모습이 어떤 모습이어야 되는지를 깨닫게 해주었다. 단원들을 향해 편안한 모습으로 지휘하고 표정 짓는 그를 보며 아주 편안한 마음으로 음악에 더욱 심취할 수 있었다.
어느 한 분야에 통달한 사람, 소위 전문가들에게서는 공통적으로 느껴지는 점이 있다. 적절하게 힘을 빼고 있다는 사실이다. 골프의 황제 타이거 우즈의 부드러운 스윙에서, 한국의 자랑인 피겨 스케이터 김연아 선수의 동작 하나 하나에서, 부드러움과 유연함이 묻어나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그들의 모습은 게으른 사람들의 나태함과는 다르다. 바람 빠진 풍선처럼 처져 있는 모습과는 전혀 다른 여유, 그것을 ‘멋진 힘 빠짐’ 쯤으로 표현하면 좋을까?
피아노를 가르치다 보면, 초보자들은 누구나 온 몸에 있는 대로 힘을 주기 때문에 힘을 빼주는 것이 나의 가장 큰 숙제 중 하나이다. 손가락과 팔에 힘을 주어 빨리 움직이려고 애를 쓰면, 근육끼리 서로 싸우며 방해가 될 뿐 좋은 결과는 나오지 않는다. 오히려 팔이나 어깨가 아프게 되고 계속해서 무리를 하면 텐더나이더스(tendonitis)와 같은 악성 직업병에까지 걸리게 된다. 정작 손가락을 잘 돌아가게 하려면 팔, 손목, 어깨에서 힘을 빼야 한다. 훌륭한 피아니스트의 연주를 보면 너무도 쉽고 편하게 피아노를 치고 있음을 금방 알 수 있다. 마치 장난하듯. 이는 끝없는 노력의 결과로 ‘릴렉스’하는 방법을 터득했기 때문이다.
우리의 인생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누구나 꿈꾸는 삶은 자연스럽게, 편안하게, 그리고 멋지게 사는 것이다. 그것을 위해서 우리는 어쩌면 ‘마음의 힘’을 빼야 할지도 모른다. 욕심을 버리는 일말이다.
기독교에선 십자가 밑에 내려놓으라고 가르친다. 불교에선 이를 위해 수많은 수행자들이 고행의 길로 들어선다. 어떤 이들은 요가나 명상을 하기도 하고, 어떤 이들은 여행을 떠나기도 한다. 뻣뻣하게 힘이 들어간 마음을 벗어 던지고, 자연스러운 나로 돌아가기 위한 노력 말이다. 그것은 우리를 더욱 성숙하게 만들고, 우리의 삶을 건강한 삶으로 만들어 주는 원동력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수영을 배울 때였다. 가르쳐 주는 코치는 물에 뜨기 위해선 온 몸에 힘을 빼야 한다고 거듭 말했다. 물론 나 역시 그 사실을 모르는 건 아니다. 그런데 문제는 내 뜻과 상관없이 뻣뻣하게 굳어버린 몸이었다. 초보자였기 때문이다. 물에 뜨기 위해 나는 안간힘을 써댔고, 힘을 쓰면 쓸수록 내 몸은 가라앉고 있었다.
때로 우리는 ‘인생의 초보자’처럼 안간힘을 쓰며 살고 있지는 않은가. 욕심을 버리고 긴장을 풀면 주변 사람들을 편안하게 하는 아름답고 성숙한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을 알면서도 말이다. 그런 우리를 만들어가기 위해 이제부터 힘을 빼는데, 힘을 써야 하지 않을까?
앤드루 박/피아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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