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한국 드라마 보는 재미가 뚝 떨어졌다는 사람들이 많다. 총선을 앞두고 벌어지고 있는 각 당의 공천 드라마가 훨씬 극적이기 때문이다.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고 갈등 요소가 넘쳐난다. 몇 명으로 구성돼 있는 공천심사위원들이 엄지손가락을 치며 세우면 회생하고 밑으로 향하면 수십년간 이어온 정치 생명이 하루 밤 사이에 끝나기도 한다. 공천 드라마의 최종 결말이 어떻게 날 지는 여전히 짙은 안개 속에 싸여 있다. 각본 없이 전개되는 현실의 드라마는 역시 허구의 드라마보다 더욱 재미와 스릴이 있다.
공천 심사 결과가 발표되면서 낙천자들의 반발도 격심해 지고 있다. 인기 드라마답게 대통령과의 관계를 빗댄 ‘형님 공천’에서부터 연고를 무시한 일부 전략 공천을 비판하는 ‘이사짐센터 공천’, 그리고 의리를 앞세운 ‘조폭 공천’에 이르기까지 새로운 조어들도 우후죽순 격으로 생겨나고 있다.
한국은 지난 1987년 대통령 직선제 실시 이후 정당 간의 경쟁은 비교적 민주적으로 이뤄지고 있지만 정당 내 경쟁은 여전히 비민주적인 형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대선 후보를 결정할 때는 국민 여론을 일부 반영하긴 하지만 흉내 내기 수준에 머물고 있다. 국회의원 후보결정은 비민주적 형태의 결정판이다.
국민을 대표한다는 국회의원 후보를 선출하는데 정작 국민들의 의견과 목소리는 거의 반영되지 않고 있다. 당에서 일방적으로 후보를 결정한다. 이런 하향식 공천에 대해 “공천이 아니라 사천”이라는 반발이 나오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미국처럼 지역 경선을 통해 당원들이 후보를 결정하는 것이 바람직하겠지만 한국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우선 정당의 이합집산이 너무 심해 후보를 결정할 만한 당원 베이스가 없다. 특히 그냥 이름만 올리는 당원이 아니라 당비를 내거나 무료 자원봉사를 하는 ‘진성 당원’ 즉, 진짜 당원이 별로 없다.
또 지구당 위원장이란 제도가 있어 공정한 경선 자체가 거의 불가능하다. 일부 지역에서 후보 결정을 위해 여론 조사를 해 본 적도 있지만 유야무야 돼 버렸다. 여론조사에서 일부 현직 위원장들이 떨어지거나 고전하는 결과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기득권을 가진 정치인들로서는 돈 많이 들고 불확실한 유권자들 눈치보기 보다는 공천권을 가진 인사들에 줄 대기가 더 경제적이고 확실하다고 생각하는 게 당연하다.
이런 비민주적 정치 행태의 중심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은 ‘탐욕’이다. 입으로는 민주주의를 외치지만 결국 개인의 이익이 민주적 절차보다 훨씬 중요하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또 공천 드라마속 갈등도 가만히 들여다보면 정당 실세들의 자기 사람 심기에서 비롯됐음을 쉽게 알아챌 수 있다.
한국 돌아가는 것을 보노라면 “국민은 일류, 기업은 이류, 그리고 정치는 삼류”라는 지적이 실감나게 와 닿는다. 그나마 일부 당에서 외부 인사들이 공천 심사에 참여하고 대폭적인 현역 물갈이가 이뤄지고 있는 것은 궁극적인 민주절차를 위한 긍정적인 조짐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지금 같은 후진적 정치로는 새 정부가 표방하고 있는 선진화가 아득하게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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