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전 대통령의 야당 시절 그의 동교동 집 지하에는 개인 서재로 쓰는 벙커가 있었다. 그의 지하 벙커를 드나들 수 있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했다. 김 전 대통령은 개인적으로 신뢰하고 좋아하는 인사들만 자신의 지하 서재로 불러들여 얘기를 나눴다. 당국의 감시가 심하던 시절 야당 지도자로서 보안을 위한 고육지책이었겠지만 아무튼 김 전 대통령의 신임을 받는 최측근 인사들만 그의 지하 벙커를 드나들 수 있었다. 그래서 언론계에서는 지하 서재를 드나들 수 있는 기자를 ‘벙커파’, 그렇지 못한 기자는 ‘비 벙커파’로 분류하기도 했다.
공인이 가진 사적 공간은 종종 공적인 의미를 지닌다. 사적 공간의 활용은 그 사람의 친소 관계를 가장 잘 설명해 준다. 그렇기에 때문에 정치 지도자들의 사적 공간은 정치적 의미를 지니는 경우가 많을 수밖에 없다.
‘캠프 데이비드’는 미국 대통령의 별장이다. 워싱턴에서 약 60여마일 떨어진 메릴랜드 커톡틴산 기슭에 위치한 이 별장은 지난 1942년부터 미국 대통령 전용 별장으로 사용돼 오고 있다. 별장을 세운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은 시원한 산 공기를 마시며 워싱턴 D.C.의 찌는 더위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다. 얼마나 큰 위안과 편안함을 맛봤는지 그는 별장 이름을 제임스 힐턴의 소설 ‘읽어버린 지평선’에 나오는 전설의 낙원을 따 ‘샹그릴라’라고 지었다. ‘샹그릴라’가 ‘캠프 데이비드’로 바뀐 것은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대통령때. 아이젠하워는 자기 손자인 데이비드 아이젠하워의 이름을 따서 별장 이름을 ‘캠프 데이비드’라고 다시 지었다.
이 별장이 전 세계인들에게 널리 알려지게 된 계기는 1978년 지미 카터 당시 대통령이 이스라엘과 이집트 정상을 이곳으로 초청해 중동 평화 협정의 기초를 놓는 ‘캠프 데이비드 협정’을 도출해 내면서이다. 이 협정으로 ‘캠프 데이비드’는 미국 외교사에서 빛나는 한 순간을 상징하는 장소로 기억되고 있다.
이후 ‘캠프 데이비드’는 대통령의 휴식뿐 아니라 외교적으로도 상당히 중요하고 의미 있는 장소가 돼 왔다. 미국 대통령들은 개인적으로 친분이 깊거나 호감을 갖고 있는 정상들을 이곳으로 초청해 친분도 다지고 외교현안도 논의한다. 매년 수많은 정상들이 미국을 방문하지만 ‘캠프 데이비드’ 초청을 받는 정상은 극소수이다.
‘부시의 푸들’이라는 오명을 얻을 정도로 부시 대통령과 가까웠던 토니 블레어 전 영국 총리는 ‘캠프 데이비드’의 단골손님 이었다. 프랑스의 시라크 대통령과 불편했던 부시는 친미노선을 표방한 사르코지가 당선되자 그를 곧 바로 ‘캠프 데이비드’로 초청해 친밀감을 표시했다. 그렇게 본다면 미국 방문 정상들도 ‘캠프 데이비드파’와 ‘비 캠프 데이비드파’로 나눌 수 있을 것 같다.
이명박 대통령이 다음 달 중순 미국을 방문해 한국 대통령으로서는 처음으로 ‘캠프 데이비드’에서 1박2일 머물며 한미 정상회담을 갖는다. 이 같은 일정은 대단히 파격적인 것으로 일단 부시 대통령이 새로 당선된 이명박 대통령에 상당한 신뢰감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의 불안한 한미관계는 미주한인들을 불편하게 만들어 왔다. 또 두 나라 간에는 현안들이 산적해 있다. ‘캠프 데이비드’에서 만나게 되면 두 정상은 백악관에서 몇 시간 갖는 형식적인 회담보다 훨씬 내실 있게 대화를 나눌 수 있을 것이다. 아무쪼록 개인적 신뢰를 바탕으로 성과를 거두는 회담이 되길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