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사하는 사람 치고 계를 안든 사람은 별로 없지요. 한인 상인들에게서 계가 없어질 수는 없을 거예요”
자바시장에서 18년간 장사를 하며 역시 18년간 계를 해오고 있다는 한 업주의 말이다.
최근 자바시장 한인상인들의 계가 깨져 수십명이 피해를 보면서 ‘계 비상’이 걸렸다. 문제의 계가 심상치 않다는 소문은 얼마 전부터 나돌기 시작했는데 기어이 ‘계가 깨졌다’는 언론 보도가 나가자 한인상인들이 한동안 술렁였다.
상인들 대부분이 계를 들고 있는 상황이다 보니 자신의 계는 안전한지 걱정이 된 것이었다. 경기가 나빠서 그러잖아도 분위기가 심란한 터에 몇 년씩 잘 나가던 계가 깨졌다는 소식은 불안을 부채질하는 효과를 가져왔다. ‘계 파동’ 보도이후 자바시장 계주들은 계원들로 부터 “우리 계는 괜찮으냐?”는 문의 전화를 수차례씩 받았다고 한다.
잊을 만하면 한번 씩 터지는 것이 ‘계 파동’이다. 그런데도 한인사회에서 절대로 없어지지 않는 것이 계이다. 1세 한인들에게는 은행 보다 친근한 것이 계이고, 은행이 줄수 없는 이점을 계가 갖고 있는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계는 우리 민족의 뿌리 깊은 상호부조의 방식이다. 멀리 잡으면 삼한시대부터 계가 있었고, 현재와 같이 목돈 마련을 위해 구성원들이 서로 돕는 형식의 계는 조선시대부터 성행했다. 이어 계는 6.25이후 크게 유행하면서 한국 서민경제의 큰 부분을 차지했다. 한인 1세들 치고 한국에서 자라면서, 어머니가 계모임에 가고, 어머니의 곗돈 심부름을 하고, 곗돈 타서 아버지 사업자금에 보태고 … 계와 관련된 기억 한두 가지 없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 친근한 기억과 경제적 필요로 한인들이 모인 곳이면 어디든 계가 만들어진다. 핑계 김에 한달에 한번씩 얼굴 보자는 취지로 친구들끼리, 동창들끼리, 직장동료들끼리 하는 계가 한인사회에는 많이 있다. 목돈 마련보다는 친목의 목적이 더 크다.
그런가 하면 장사하는 사람들끼리의 계는 상호부조의 의미가 크다. 물건 구입할 때, 가게 확장할 때, 자녀 결혼 시킬 때 등 목돈 필요할 때에 대비해 계를 들고 그달그달 돈이 필요한 사람이 계를 타게 하며 서로 돕는 것이다. 이런 계는 10년, 20년씩 계속되면서 계원들끼리 집안사정을 시시콜콜 다 알아 웬만한 친척 보다 더 가까워지는 경우가 흔하다.
‘계 파동’은 친목이 무시되고 돈에 너무 비중이 갔을 때 터지는 일이다. 돈의 액수가 너무 크거나, 계원들끼리 서로 얼굴도 모르는 상태의 계는 위험부담을 안고 있다.
이번에 수십명이 피해를 본 계는 일수계였다. 한달에 한번 모두 모여 곗돈을 내는 대신 매일 계주가 계원들을 찾아가 돈을 걷는 것이 특징이다. 매일 내는 곗돈이 수백달러이면 한달에 수천달러, 한번에 타는 돈은 10만 단위가 된다. 경기가 나빠져 계돈을 못내는 사람들이 생기면서 사건이 터진 것인데, 기본적으로는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이 계주만 믿고 거액을 주고받은 것이 화근이었다.
계의 기본정신은 상호부조이다. 서로 믿을 수 있는 사람들끼리, 그래서 서로 도움을 주고받고 싶은 사람들끼리, 부담되지 않은 액수로 하는 것이 원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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