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6년 전 이맘때 샌프란시스코는 몹시 추웠다고 한다. 날씨도 날씨였지만 사람들의 마음이 많이 추웠다. 겨울은 닥쳤는데 먹을 것, 입을 것, 거처할 곳이 마땅치 않아 찾아드는 뼛속까지 시린 한기였다.
당시 샌프란시스코에는 기존의 빈민들과 아울러 그즈음 배 한척이 파선되어 생긴 난민들로 추위와 굶주림 속에 12월을 맞는 사람들이 상당수에 달했다.
이들의 처지를 안타깝게 생각하던 그 지역 구세군 사관, 조셉 맥피 정위는 크리스마스 날 만이라도 이들을 기쁘게 해주고 싶었다. 크리스마스에 이들 모두를 초대해 식사를 제공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는데 문제는 돈이었다.
“어떻게 하면 돈을 마련할 수 있을 까” 궁리에 궁리를 하던 그는 문득 영국, 리버풀에서 선원으로 일하던 시절이 떠올랐다. 그때 부둣가에 놓여있던 ‘심슨의 솥’이 기억났다.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솥에 돈을 던져 넣고, 그렇게 모인 돈으로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자선의 솥이었다.
다음날로 그는 시당국으로 달려가 허가를 받고 오클랜드 부둣가에 비슷한 솥을 내 걸었다. 그리고는 “이 솥을 끓게 합시다”라고 써 붙였다.
연말의 가장 정겨운 전통, 구세군 자선냄비는 이렇게 처음 시작되었다. 1891년 12월 맥피 사관의 자선의 솥 행사는 크게 성공을 거두어서 1,000여명이 따뜻한 식사를 대접받았고, 행사는 해가 갈수록 미전역으로 퍼져나갔다.
4년 후인 1895년 크리스마스에는 서부 30개 구세군 본부에서 자선냄비를 설치했고, 길가에 냄비를 걸고 모금하는 이 특이한 불우이웃 돕기 활동을 당시 새크라멘토 비는 상세히 보도했다. 이어 자선냄비 행사에 참여했던 젊은 구세군 사관 두명이 동부로 파송되면서 이 새로운 전통은 보스턴, 뉴욕 등 동부에서도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다.
특히 유명한 자선냄비 전통은 뉴욕의 매디슨 스퀘어 가든에서 열린 거대한 크리스마스 디너. 1901년 시작된 후 여러 해 동안 수많은 불우 이웃들의 크리스마스를 따뜻하게 지켜주었다.
한국에 자선냄비가 등장한 것은 1928년. 당시 한국 구세군 사령관이었던 박준섭(조셉 바아)사관은 일제 치하의 못 먹고 헐벗은 빈민들을 돕기 위해 그해 12월15일 서울의 도심에 자선냄비를 설치했다.
올해도 예외 없이 빨간 자선냄비와 구세군 종소리가 연말을 알리고 있다. 남가주 한인타운에서는 지난주부터 곳곳에 자선냄비가 설치되어 나눔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자선냄비 봉사자들의 말을 들어보면 많이 가졌다고 나눌 여유가 있는 것은 아니다. 언젠가 한 구세군 사관이 한 말이다.
“마켓 앞에서 종을 울리며 서있으면 재미있는 현상을 보게 되지요. 주차장에 고급차가 들어오면 별로 기대를 안 해요. 양손에 샤핑 백을 잔뜩 든, 가진 사람들은 자선냄비에 내밀 손이 없어요. 그보다는 허름한 차를 타고 오는 사람들, 별로 가진 것 없어 보이는 사람들이 오히려 냄비에 돈을 넣지요”
나눔은 돈이 아니라 마음이다. 나누는 마음이 추운 연말을 훈훈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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