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주영-88올림픽 정몽준-월드컵 정몽구-여수 엑스포
‘올림픽, 월드컵에 이어 엑스포까지’
현대 가문의 3부자(父子)가 ‘트리플 크라운’의 신화를 이뤘다. 한번 치르기도 힘들다는 세계 3대 국제 이벤트를 ‘불도저 가문’의 3부자가 대를 이어가며 대한민국에 유치하는데 일등공신 역할을 한 것. 현대가 특유의 뚝심과 추진력이 민간외교에서도 빛을 발한 셈이다.
1981년 9월30일 독일 바덴바덴에서 열린 IOC 총회에서 사마란치 위원장이 ‘쎄울’을 외치는 순간 고 정주영 명예회장(가운데 왼쪽)과 한국 대표단이 감격하며 환호하고 있다.
■정주영-88올림픽·정몽준-월드컵
현대가의 트리플 크라운 도전은 1981년 시작된다. 창업주인 고 정주영 명예회장은 당시 88서울올림픽 유치위원장으로 나서 ‘독일 바덴바덴의 기적’을 일궈냈다.
정 회장은 당시 전경련 회장으로서의 영향력을 발휘하여 행정관료와 외교관, 경제인, 체육인 등 각 분야 인사들로 구성된 유치단의 팀워크를 이끄는 중심인물로 활약했고 유럽지역 IOC위원들 사이에 영향력이 큰 영국의 엑세터 위원과 서독의 바이츠 위원을 설득했다.
당시 정부는 물론 일반 국민도 정 명예회장을 비롯한 경제인이 주축을 이룬 올림픽유치단이 88올림픽을 서울로 가져올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그러나 서울은 최종 투표에서 52대27의 압도적인 표차로 먼저 유치전에 뛰어든 일본 나고야를 제치고 말았다.
그로부터 15년 뒤, 이번에는 아들 정몽준 의원이 월드컵 유치에 뛰어들었다. 정 의원 역시 국제축구연맹(FIFA) 부회장과, 대한축구협회장으로서 2002 한일 월드컵 유치에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1996년 5월31일 스위스에서 정몽준(오른쪽) FIFA 부회장이 나가노 일본대표와 FIFA컵을 안고 2002 월드컵 공동개최 결정을 축하하고 있다.
■정몽구-여수엑스포
99년 정몽구 현대ㆍ기아차 회장은 2010 여수 엑스포 유치위원장을 맡아 그룹의 인적ㆍ물적 자원을 총동원했으나 2년 넘게 진행된 유치전에서 여수는 중국 상하이에 고배를 마셔야 했다.
5년을 절치부심하던 정 회장은 올 8월 명예 유치위원장으로 복귀해 유치전에 재시동을 걸었다. 그룹 전체가 엑스포 유치를 위한 비상체제로 전환되고 세계박람회기구(BIE) 본부가 있는 프랑스 파리에는 연락사무소가 개설됐다.
직접 현장을 확인해야 성에 차는 정 회장은 지난 6개월 동안 지구를 세 바퀴 도는 대장정을 강행했다. 그는 캐나다, 터키, 중미 등 10여개국을 찾아가 150여명의 고위급 인사에게 여수 지지를 요청했다. 특히 결선투표에서 표심을 잡기 위해 현지공장까지 ‘선물’하며 동유럽과 러시아의 지지를 이끌어낸 것이 주효했다는 분석이다.
정몽구(왼쪽) 현대·기아차 회장이 10월9일 파리의 포시즌 호텔에서 세계엑스포(BIE) 회원국 대표들을 초청, 여수 지지를 당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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