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석유파동이 났을 때 필자는 체이스 맨해턴은행에서 여신심사 일을 하고 있었다. 기업들의 코스트가 갑자기 엄청나게 올라가고, 영업 이윤이 줄고, 대부분 대출신청 기업들의 자금 흐름의 예측이 형편없이 되어버려서 분석하는 케이스마다 대출자금의 상환이 어렵게 보이는 상황이 왔던 기억이 난다. 고유가가 기업 활동에 미치는 영향의 분석 없이는 아무런 대출도 승인나기가 힘들었다. 그 당시 미국 내에서의 개솔린 가격은 갤런당 40센트가 넘는다고 난리였다.
그 후 두 번의 에너지 파동이 더 왔었고, 경제는 그때마다 휘청거렸다. 주식시장도 고유가의 펀치 앞에서는 힘없이 무너졌다. 중동에서 무슨 뉴스가 나올 때마다 석유 값은 흔들렸고 경제도 마찬가지였다. 경제가 나쁘면 항상 그 이유 중 하나는 고유가였다.
지금의 고유가 행진이 시작한지도 거의 5년이 되어간다. 배럴당 100달러가 놀랍지 않게 되고 갤런당 개솔린 값이 3달러가 넘는 시대가 왔다. 그런데 이것이 파동이라고 생각하고 이 파동이 빨리 지나갔으면 하고 바라는 분들은 이제부터 마음을 고쳐가져야 하는 시대가 왔다.
아마 이것은 파동이 아닐 것이다. 현실로 인정해야 할 것이다. 물론 지금의 가격은 단기적으로 공급 쪽에서의 몇 가지 요인으로 좀 높게 책정되어 있고, 석유 선물시장에서는 앞으로 가격이 낮아지리라는 예상이 나와 있으나 5년 전으로의 회귀는 힘들다.
그런데 이 고유가 시대가 시작한 지가 5년이 되어가는 데도 그동안 경제는 에너지 쇼크란 영향에서 멀어져 있었다. 주식시장은 서브프라임의 악영향이 오기 전까지는 그런대로 새로운 기록을 만들만큼 괜찮았다. 경제성장도 그런대로 건강한 페이스였다.
왜 그럴까. 고유가의 영향은 어디로 갔을까.
시장의 역학이 바뀐 것이다. 이제 석유 값이 경제에 펀치를 먹이던 시대는 끝난 것이다. 이제 경제가 석유 값에 주는 영향이 더 큰 시대가 온 것이다.
인도와 중국을 비롯한 새 경제 파워들의 급속한 경제성장과 딴 글로벌 경제의 일반적인 호황이 계속되면서 세계경제의 석유소비가 너무 늘어나 버린 것이다. 지금의 고유가는 그래서 온 것이다.
그리고 미국 경제는 옛날처럼 에너지에 크게 기댄 제조업의 비율이 경제의 20% 정도밖에 안될 정도로 서비스업의 비율이 엄청나게 올라가 버려서 고유가의 영향은 더더욱 적어진 것이다.
그런데 시장의 역학관계가 바뀌면서 우리의 생각도 바뀌어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글로벌 경제 어느 한 곳이나 여러 곳에서 경제성장이 정체되고 에너지 소비가 줄어들면 석유 값은 분명히 떨어질 테지만, 그것이 과연 좋은 것일까 하는 것이다.
경기가 나빠져서 석유 값이 떨어진다고 우리가 좋아할 수 없게 되어버린 현실은 우리에게 세상은 항상 변한다는 교훈을 준다. 개솔린 가격이 조금 떨어지면 우리는 좋아하겠지만, 그것이 큰 폭으로 떨어지는 것은 상상만 해도 즐겁지 않은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는 예상은 우리의 상식이 변해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 준다.
3달러짜리 개솔린이 고맙다고 해야 할까. 참 세상 살기가 어렵다고 해야 할까. 개솔린 값이 너무 비싸지면 우리가 할 일은 아마 우리 주위에서 글로벌 경제 덕분에 좋아진 것들을 찾아서 즐거워해야 할 것 같다. 사실 그동안 옛날에 보던 악성 인플레는 못 본지가 오래되지 않았는가. 글로벌 경제 덕분에 석유 말고 다른 것들은 싸게 오랫동안 잘 쓰고 지내지 않았던가.
이종열
페이스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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