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한국 대통령 중 등산을 제일 열심히 다닌 사람은 아마 김영삼 전 대통령일 것이다. “왜 그렇게 열심히 등산을 다니느냐”고 묻자 YS는 “머리를 빌릴 수 있어도 건강은 빌릴 수 없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일리가 있는 주장인데도 당시에는 “YS는 역시 머리가 나쁘다”는 조롱만 들었다.
그러나 지도자의 건강이 역사를 바꾼 사례는 많다. 죽음을 앞둔 프랭클린 루즈벨트가 얄타회담에서 스탈린에게 동유럽을 다 넘겨주는 등 대폭적인 양보를 하고 한반도를 갈라놓는 빌미를 제공한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지만 지금 민주당 대통령 후보 중 선두를 달리고 있는 힐러리 클린턴의 운명도 당시 뉴욕 시장이던 루돌프 줄리아니의 건강이 크게 좌우했다.
대니얼 패트릭 모이니헌 연방 상원의원(민)의 은퇴로 공석이 된 2000년 뉴욕 주 연방 상원의원 자리를 놓고 여러 정치인이 달려들었지만 당시 당선이 가장 유력시되는 인물은 줄리아니 뉴욕 시장(공)이었다. 7년간 뉴욕 시장으로 일하며 범죄와 불경기에 시달리던 뉴욕의 면모를 일신, ‘뉴욕 르네상스’를 가능케 한 장본인인 그의 인기는 최고였다.
전통적으로 민주당 아성인 뉴욕 주의 상원 자리를 공화당에게 넘겨주게 된 민주당 지도부는 줄리아니를 꺾을 수 있는 대항마를 찾기 시작, 힐러리 클린턴이야말로 그를 이길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이란 결론을 내리고 찾아가 출마를 종용했다. 그 때까지 한 번도 공직에 출마한 경험이나 뉴욕에 연고가 없는 힐러리와 뉴욕 시민의 영웅 줄리아니가 붙었더라면 아마도 줄리아니가 이겼을 가능성이 높고 그렇게 됐더라면 힐러리는 정치인의 꿈을 접었어야 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2000년 5월 줄리아니는 선거를 6개월 앞두고 돌연 출마 포기를 선언했다. 전립선암 진단으로 그 치료를 위해서는 캠페인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라는 것이 이유였다. 이혼을 둘러싼 추문도 작용했겠지만 어쨌든 그 결과 힐러리를 손쉽게 상원의원이 됐고 이제는 백악관 입성을 바라보고 있다.
7년 전 두 사람이 대결했더라면 어떻게 됐을까가 궁금한 사람은 내년 대선이 더욱 흥미로울 것이다. 민주당에서는 사실상 힐러리로 굳어지고 있고 공화당에서는 줄리아니가 제일 유력시되고 있기 때문이다. 공화당 보수파 일각에서는 낙태, 동성연애, 총기 규제 등에서 리버럴한 입장에 서 있는 줄리아니를 못마땅하게 생각하면서도 그 외에는 힐러리를 이길 수 있는 대안이 없다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지고 있다. 사회적으로 리버럴한 후보가 나서면 전통적으로 민주당 성향이지만 표 차가 미미한 뉴저지 같은 주들도 흔들 수 있다는 계산이다.
그 줄리아니가 지난 13일 미셸 박 스틸 가주 조세형평위원과 홍명기 ‘밝은 미래재단’ 이사장 등이 주최한 기금모금 행사 참석 차 LA 차이나타운에 왔다. 그는 한미 자유 무역협정을 지지하고 공화당 후보 중 이민 정책에 있어 비교적 개방적인 인물이다. 힐러리와 줄리아니 두 사람 중 누가 과연 한인 사회의 이익을 잘 대변할 수 있는 인물인지 한인 유권자들도 지금쯤은 생각해 두는 것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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