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가주의 회사원 L씨는 지난 연말 지인으로부터 케이크를 선물 받았다. 평소 업무상 도움을 준 데 대한 감사의 표시라는 것이었다.
집으로 돌아온 그는 케이크 상자를 뜯지도 않은 채 이웃집으로 갔다. 이웃사촌으로 가깝게 지내는 그 가족에게 그러잖아도 연말을 맞아 조그만 선물을 하려던 참이었기 때문이었다. 그 집에는 어린 아이들도 있고 하니 케이크가 선물로 아주 적당하다 싶었다.
그리고는 잊어버렸는데 그 가족들은 볼 때마다 ‘감사하다’를 연발했다. “너무나 고맙다. 그렇게까지 신경 써줄 줄은 몰랐다”며 희색이 만면해 감사의 표시를 하는 것이었다. 도가 지나쳐 L씨로서는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그의 의문이 풀린 것은 며칠 후였다. 아이들을 데리고 샤핑을 다녀오던 그 부인이 백화점 쇼핑백을 여러 개 든 채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얘들아, 아저씨에게 감사하다고 인사해야지? 지난번에 주신 선물권으로 산 거예요”
케이크 상자 안에 백화점 선물권이 들어 있었던 것을 그는 그제 서야 알았다. 업무 상 관련된 지인은 ‘좀 특별한 케이크’를 보냈는데 그는 보통 케이크인줄 알고 남에게 줘버렸던 것이었다.
한국의 ‘떡값’ 문화가 미국에서 빚어낸 어설픈 해프닝이었다. 케이크 상자에 든 선물권은 보기에 따라서 ‘뇌물’일수도 있고 ‘선물’일수도 있었던 수준. 준 사람과 받은 사람 사이에 이심전심의 교감이 없었던 것이 문제였다.
사과상자, 케이크 상자, 음료수 상자 … 무슨 상자든 무심코 넘길 수 없는 것이 한국의 ‘떡값’ 관행이다. 소위 권력층 인사들은 누군가 ‘상자’를 들고 오면 무게부터 가늠해 보는 것이 일반적. 1만원권을 기준으로 음료수 상자 하나면 1,000만원, 케이크 상자는 5,000-8,000만원, 사과 상자는 4억원이라는 것은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계산법이다.
그런 한국에서도 해프닝이 없지는 않다. 뇌물의 단위를 오해해서 해프닝이 생기기도 한다. 2년 전 부산지방 국세청에서 일어난 일이다. 소득 8억여만원을 탈루해 추가 세무조사를 받게 된 사람이 담당 직원에게 청탁을 했다고 한다.
“세무조사를 하지 않으면 섭섭하지 않게 해주겠다. 얼마면 되겠느냐”고 제의를 했고, 세무공무원은 손가락 하나를 들어 보였다. 척하면 척, 서로 잘 알아들은 줄만 알았다.
그런데 나중에 돈 가방을 받은 그 공무원은 깜짝 놀랐다. 1,000만원을 생각하며 손가락 하나를 들었는데 상대방은 1억원으로 알아들은 것이었다. 액수가 너무 커서 돈을 돌려주기는 했지만 결국 그 공무원은 뇌물수수 혐의로 구속되었다. 액수가 중요한 것은 5,000만원 이상이면 특정범죄 가중처벌법이 적용되기 때문. 재판 내내 그 공무원은 “손가락 하나는 1,000만원”을 줄기차게 주장했다고 한다.
한국의 촌지, 떡값 등 뇌물 관행이 13일 뉴욕타임스에 상세히 보도되었다. 삼성의 ‘떡값 검사’ 스캔들을 계기로 노무현 정권을 둘러싼 각종 부패 사건들을 다루었다. 뇌물은 인류 역사 만큼이나 오래 되고 어느 나라에나 있는 일이지만 기분이 개운치는 않다. 한국이 선명 투명 청렴 같은 이미지와 결부되는 날은 언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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