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친 형제라 해도 증오나 적대심이 심화하면 남과 다름없다. 서로 몇 년씩 보지 않고 지낸다.
그러나 형이 양보하여 동생을 만나 주면 그 답례로 동생도 형을 답방하는 것이 예의일 것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아마도 자기가 형이니 동생들이 자주 찾아와 보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실은 사실대로 짚고 넘어가자. 남한이 형 역할을 해왔다. 그러면 으레 북한에서도 한번쯤은 방문했어야 할 일이다.
그래서 남북 정상회담에 남쪽에서만 두번째 연이어 평양을 찾아간 것이 어딘지 석연치 않다. 그러나 인기 하강으로 치닫고 있는 임기 말의 노무현 정부로서는 뭔가 역사적 업적을 남기고 싶은 마음 또 열세에 몰린 여당의 입지 전환용으로 정상회담을 추진했다고 본다. 또 남한 선거에 북풍을 일으킬 수도 있으리라는 김정일의 기대도 맞아 떨어진 셈이다.
이왕 벌어진 ‘연극’이니 겨레의 장래에 덕이 되는 회의가 되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우선 한반도 비핵화란 북한으로서는 어려운 문제다.
북미 관계개선과 미국과의 평화 협정체결을 구축하기 위하여 북한이 핵 포기에 들어간 것은 사실이다. 북한으로서는 벌거벗고 경제 구걸에 나설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남한 형제에게 세울 체면 거리도 사실 별로 없는 처지에 있다.
남한으로서는 이때에 확고한 주고 받기식 외교를 펼쳐야 하겠다. 찔끔찔끔 하는 이산가족 만나기를 대폭 확대하고 납치 인사들에 대한 책임 추궁, 남한 국군포로 귀환 문제, 전쟁 중 실종 군인들에 관한 조사 실시, 아울러 인권 이슈도 회의석상에 내놓을 수 있는 과감성을 보였으면 한다. 그러고도 굶는 북한 형제를 도울 수 있지 않겠는가.
남이 듣기 좋아하는 것만 골라 하는 외교는 너무 쉬운 것이다. 전시 효과나 일시적 분위기 전환용으로만 되지 않기를 바란다. 또한 차기 정부의 남북 관계개선에 도움이 되는 틀을 짜준다는 정신으로 정상회담이 진행되기 바란다. 다음 정부가 이행할 수 없는 약속을 하고 오면 곤란할 것이다.
차기 정부도 긍정적 태도를 가져야 할 것이다. 전임 정권의 정책을 존중하고 이어받는 역사적 사명감을 가지고 임하여야 할 것이다.
북한도 살아남으려면 이제까지의 태도와 의식 구조를 바꿀 때가 되었다. 민족주의자인양 하면서도 미국과의 협상만 노리면서 남한 형제를 토사구팽 식으로 이용하려는 구태의연함에서 벗어 나야만 한다.
대북관계에서 지나친 기대나 환상은 금물이다. 공산주의 체제하에서 자란 사람들의 인간관계나 국가관은 다르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한 중국 외교관이 미국 관료와 대화 중 북한 이야기가 나오자 혀를 차며 “우리도 사회주의 산물이지만…” 하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더라는 내용이 어느 국제정치 논평지에 실렸던 것이 생각난다. 말인즉 북한에 줄 원조 물자를 기차에 실어 평양까지 보냈더니 싣고 간 기차를 안돌려주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기차를 보내 달라고 했더니 기차까지 보낸 것이 아니냐며 안돌려 주었다는 이야기이다.
“남한이 잘 살아서 북한 형제를 좀 도와주는 것이 무에 그리 대단한가, 서로 나누어 먹는 것이지”하는 사회주의적 사고방식에서 사유재산을 주축으로 하는 자본주의적 의식 구조를 그들도 이해해야 할 때가 왔다.
서로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겨레의 운명이 걸린 큰 그림을 염두에 둔 정상 회담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차만재 / 칼스테이트 프레스노 정치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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