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버드 경영 대학원에서 가르치지 않는 것이라는 저서에서 마크 매코맥은 1979년도 하버드 MBA 졸업생들의 연간소득을 소개했다. 당신은 뚜렷한 목표가 있는가? 있다면 그것을 기록하고 그것을 달성하기 위한 세부적인 계획을 가지고 있나?라는 설문에 졸업생 중 3%만이 그렇다고 답했다. 13%는 목표는 있지만 적어두지 않았고, 나머지 84%는 둘 다 없다고 답했다. 10년 후 이들 졸업생의 소득을 조사한 결과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목적을 가진 13%학생은 목적 없는 84%학생보다 2배의 수입을 올렸다. 더 놀라운 것은 목표를 적어둔 학생 3%는 나머지 97% 학생들보다 평균 10배 이상을 벌고 있었다.
이런 통계에도 불구하고, 대부분 학생들은 뚜렷한 목표 없이 뗏목이 바다에서 표류하듯 떠다닌다. 그들의 핑계는 각양각색이다. 첫째는 왜 목표가 있어야 하는지 반문한다. 이는 회의주의자로서 사르트르의 소설 구토에 등장하는 로깡땡같은 인물이다. 그는인간은 길에 굴러다니는 돌이다라고 생각한다. 길가의 돌은 아무 이유 없이 그저 우연히 있을 뿐, 거기에 있어도 좋지만 없어도 전혀 지장 없는 잉여물이다. 인간도 마찬가지로 이 세상에 존재해야 할 필연적 이유나 어떤 임무를 띠고 태어난 것이 아니라, 그저 괜히 우연하게 태어나, 왜 사는지도 모르고 목적 없이 표류하다가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진다. 이런 잉여물 같은 인생에 목표라는 것이 필요 있을까? 로깡땡은 나는 세상에 무엇 무엇을 하기 위해 태어났다며 의미부여를 주는 사람을 살로(치사스러운 놈)라고 부른다.
둘째는 내 것이 없고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모르는 방관주의자들이다. 이들은 신라시대 처용이 자기 아내가 다른 남자와 잠자리를 같이 하고 있는 것을 보고, 노래 부르고 춤추며 물러나는 것처럼 상식을 초월하는 방관에 빠진다. 동경 달 밝은 밤에 밤늦도록 노닐다가/ 들어와 자리를 보니 다리가 넷이로구나/ 둘은 내 것이지만 둘은 누구 것인고/ 본디 내 것이지만 빼앗긴 것을 어찌하리부른 것 처럼 낸들 어찌하랴가 대답이다.
셋째는, 실패의 두려움이다. 어차피 안될 일 무엇 때문에 애를 쓰고 목표를 세우나가 그들의 대답이다. 그들에게는 태산이 높다 하되 하늘 아래 뫼이로다/ 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를 리 없건마는/ 사람이 제 아니 오르고 뫼만 높다 하더라라는 조선시대의 명필인 양사언의 시조가 귀에 들리지 않는다.
넷째는 다른 사람 눈치 보느라 자신의 목표를 세우지 못한다. 집에서는 부모 눈치, 학교에서는 선생님 눈치, 직장에서는 상사 눈치를 살피고, 남의 취향이나 욕망을 충족시키느라 자신의 목표보다는 남의 의견에 좌지우지한다. 남의 비위를 맞추느라 마음에 없는 소리를 하게 되어 자아를 상실하니 자신의 목표는 온데 간데 없다.
목표가 있는 삶은 무엇이 달라도 다르다. 이왕 살아야 하는 인생이라면 3%의 삶을 향해 달려가야 하지 않을까? 까뮈의 소설 ‘시지프스의 신화’에 등장하는 시지프스처럼 말이다. 그는 바위를 산꼭대기로 밀어 올려놓으라는 형벌을 신들로부터 받았다. 아무리 올려도 굴러 내려오는 바위들을 시지프스는 끝도 없이 정상으로 밀어 올리려고 한다. 미련 곰탱이 같은 짓이지만 산꼭대기를 향한 그의 투쟁 자체가 3%의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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