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1.5세 정체성 운동 불길
한인시민연맹(AKCO)은 한인사회 발전을 위한 단체로 활동영역을 확대했으나 재정이 고갈되면서 1981년 이화목 장로의 딸 이애경씨를 마지막 회장으로 해산된다. 그러나 한인사회의 미래를 향한 뜻있는 한인들의 노력은 2세 육성사업으로 이어져 1970년부터 한인회 사업으로 한미청소년후원회(KAYF)가 조직돼 운영되기 시작했다.
청소년후원회(KAYF) 캠프통해
7천여 차세대 꿈나무 양성
대학생 리더십 컨퍼런스 거친
젊은이들 각계 지도자로 활약
주류사회에 한인파워 각인시켜
<1980년 첫 대학생 리더십 컨퍼런스 참석자들이 행사를 마치고 자리를 함께 했다.>
KAYF는 어린 1.5세 또는 미국에서 태어난 청소년들에게 ‘정체성’을 심어주기 위해 조직됐다. 이곳에서는 한국문화를 비롯해 한국어, 태권도 등을 교육시키는 한편 참가자들이 서로 네트웍을 자연스럽게 이루도록 했다.
빅베어에 마련된 자체 캠프장에는 1995년까지 7,000여명의 차세대 꿈나무들이 다녀가며 미래의 꿈을 키웠다.
이 후원회에 관여했던 인사로는 권길상, 김관차, 김규섭, 김능집, 김기순, 데이빗 김, 마지 김, 김성운, 김종국, 김하태(작고), 제이 노, 노준희(작고), 문경호, 박원석, 박찬응, 백용준, 백운수, 서한규, 석진영, 송영두, 안성주, 셜리 안, 오삼열, 오익환, 옥공연, 마샬 류, 윤명현, 이수녕, 이영일, 임원규, 임홍섭, 전흥식, 조의원, 최상우, 홍재룡씨 등이 있다.
정서적으로 민감한 청소년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준 KAYF는 ‘대학생 리더십 컨퍼런스’ 프로그램을 낳았다.
1980년 시작된 이 프로그램은 차세대 지도자 육성에 실질적인 효과를 불러오기 위해 각계에서 활동 중인 주요 인사들이 연사로 참석했다.
이중에는 이경원(언론인), 오순택(영화인), 수잔 안(도산 안창호 맏딸), 유의영(칼스테이트LA 교수), 앤젤라 오(변호사), 김창준(연방하원의원), 샘 리(올림픽 다이빙 금메달리스트), 유재건 변호사(현 한국 국회의원) 등이었다.
또 여기에 참가했던 대학생들이 훗날 한인사회 각계에서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게 되는데 정동수, 크리스 김, 던컨 리, 크리스틴 리, 데이빗 김(이상 변호사), 제이 로, 켄 김(이상 의사), 데이빗 S 김(MTA 로비스트), 찰스 김(KAC 전국 사무국장), 임혜빈씨 등이 그들이다.
또 당시 사회상은 1970년 후반부터 시작된 이민 열기가 80년대 들어오면서 더욱 탄력이 붙었고, 한인사회는 빠른 속도로 팽창하고 있었다. 또 이 무렵은 60~70년대에 이민 왔던 한인들의 자녀들이 막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생활로 뛰어들던 시기이자, 그들에겐 ‘혼돈의 시간’이었다.
1.5세들이 자신의 ‘정체성’(identity)에 대한 고민이 컸기 때문이다.
자신들의 의지와 상관없이 이중언어와 이중문화, 그리고 세대 단절이란 딜레마에 빠진 그들은 “우리는 누구인가?”란 스스로의 질문에 명쾌한 해답을 얻지 못하고 있었다.
이같은 현상은 1.5세 자신들과 뜻있는 인사들로 하여금 한인 이민사회에 ‘변화’의 필요성을 인식하게 만들었고, 나아가 이를 해결하는 방법론에 고민하고, 마침내 하나 둘씩 결과를 불러오게 만들었다. 1983년이 그 시발점이었다.
KAC가 만들어진 1983년 한해에만 한인청소년 회관(KYC)을 비롯 아태법률센터, 한인 언론인 연합회 등 현재 이민사회의 권익을 위해 활동하는 단체들이 속속 등장하는 등 1.5~2세 단체조직이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언론인 연합회는 이경원씨를 주축으로 본보 영문 편집국장을 지낸 임갑순씨, 현재 LA타임스에서 활동하고 있는 카니 강씨 등이 참여했다.
한인사회 최초의 장학재단인 한미장학재단이 남가주에 뿌리를 내리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이었다.
원래 1969년 워싱턴 DC에서 가정형편이 어려운 유학생들을 돕기 위해 시작된 이 재단은 1983년 워싱턴 지역 5대 회장을 맡고 있던 김웅수 박사가 김기순 당시 청소년후원회 이사장에게 서부지역 이사직을 맡아줄 것을 요청한 것이 계기가 됐다.
1983년은 또 한인사회에 정치력 신장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깊이 심어주는 사건들이 잇달아 발생하기도 했다.
그해 6월13일 전국적인 독자층을 확보하고 있던 ‘타임’ 매거진의 이민 커뮤니티 특집판에는 해리 가타노 당시 UCLA 교수의 기고문 형식을 빌려 한인을 비하하는 내용의 글이 실렸다.
타임은 이 기사에서 한인사회를 영어를 배우려하지 않고 의사표현 능력이 없는 빈 머리를 가진 사회로 묘사, 한인사회는 물론 모든 이민 커뮤니티의 분노를 샀다.
정동수, 찰스 김씨, 워런 후르타니 당시 UCLA 동양학연구소 프로그램 코디네이터, 한인단체 관계자들은 즉각 반발하며, 베벌리힐스에 위치한 ‘타임’ 매거진 LA지국에 이에 대한 시정을 요구하기 위해 만나줄 것을 수차례 요청했으나 거부당했다. 또 어렵게 성사된 만남에서 벤자민 케이트 지국장은 정동수, 민병수, 서동성, 데이빗 현, 수지 오, 제인 김씨 등 한인 대표들과의 만남에서 사과 요구는 물론 시정도 거부했다.
이에 분노한 한인들은 지국 앞에서 시위를 벌였다. 한인 이민사회가 주류사회를 상대로 벌인 첫 시위였다.
그러나 타임은 한인사회의 강력한 대응으로 한인사회를 바라보는 시각이 바뀌게 됐으며, 훗날 이민 2세이면서 하버드대를 막 졸업한 지니 박씨를 리서치 작가로 공식 채용했다.
박씨는 타임에 입사한 뒤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며 승승장구, ‘인 스타일’ 편집장을 지냈고, 현재는 ‘피플’지에서 최고 경영자 중 한명으로 활약하고 있다.
또 다른 사건은 그해 9월1일 발생한 대한항공 007편 격추 사건.
소련 영공에서 소련 전투기의 미사일 공격으로 269명의 무구한 인명을 앗아간 충격적인 사건에 한인들은 치를 떨었다.
한인들은 연일 소련의 만행을 규탄하는 한편, 보드카를 싣고 온 소련 국적의 상선 노보루이세프스크호가 롱비치로 입항한다는 정보를 입수해 당시 반 소련단체였던 ‘발틱자유연맹’과 연대해 직접 항만 입구에서 한인 300여명의 시위를 벌였다. KAC 회원들은 연방정부 기관 등에 보내는 공문들을 주로 담당하면서 주류사회에 한인사회의 목소리를 알리는 역할을 수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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