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레반에 납치된 한국인 인질 석방을 위한 협상이 반전을 거듭하고 있다. 한국정부는 현재 남은 인질 22명의 무사귀환을 위해 백방으로 노력을 쏟고 있지만 협상 과정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거기에는 몇가지 이유가 있다.
무엇보다 탈레반이 통일된 성격의 집단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렇기 때문에 단일 창구를 통한 효율적 협상이 어려울 수 밖에 없다. 또 한국군의 즉각 철군에서부터 탈레반 포로석방, 몸값에 이르는 탈레반의 요구가 과도해 쉽게 받아 들이기 힘들다는 측면도 협상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정치적 목적을 위해 민간인을 집단 납치한 탈레반의 행위 자체가 지닌 야만성과 알카에다와의 연계 등 협상을 쉽지 않게 만드는 명분상 요소도 있다.
아프간 하미드 카르자이 대통령은 지나 반년간 권력기반이 급속히 약화돼 왔다. 아프간은 민족국가라기 보다는 부족국가이다. 부족이 먼저 있고 그 다음에 국가가 있는 나라이기 때문에 부족장들의 영향력이 절대적이다. 노무현 대통령과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이 카르자이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 석방을 위한 노력을 당부했지만 현 상황에서 아프간 대통령의 영향력은 미미한 상태다. 카르자이 대통령 입장에서는 주요 포로들을 석방할 경우 자신의 정권 기반 약화를 재촉하게 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인질 맞교환과 관련해 가장 중요한 변수가 되고 있는 것은 미국의 입장이다. 주요 포로교환은 최소한 미국의 묵인 없이는 이뤄지기 힘들다. 미국으로서는 인질을 잡고 대가를 요구하는 테러범들에게 굴복할 수 없다는 ‘원칙’과 혈맹인 한국의 민간인들이 위험에 처해 있는 상황을 외면할 수 없다는 ‘현실’사이에서 고민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표면적으로는 인도적 차원에서 인질 석방을 요구하는 정도지만 막후에서는 한국에 정보제공 등의 간접적 지원을 하고 있는 것으로 관측된다.
노무현 대통령의 전권을 위임받은 백종천 청와대 안보실장이 ‘아프간 특사’ 자격으로 현지로 날아갔다. 나는 인질석방 협상에 백 특사의 역할이 결정적일 것으로 전망한다. 백 특사는 육사교수 출신의 국제정치학자로서 미국을 누구보다 잘 알고 미군들 사이에 신망이 높은 사람이다. 대통령의 전권을 위임받고 간 만큼 현지 부족장, 그리고 아프간 정부와의 협조과정에서 힘을 발휘할 뿐 아니라 미국과도 원만하게 대화를 조율해 나갈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협상이 잘 진행돼 하루속히 인질들이 가족들 품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되기를 기원한다.
이채진 / 클레어몬트 맥케나대 국제문제 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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