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스턴 미술관에는 내가 가장 감탄하는 그림 중의 하나인 고갱의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가 있다. 그가 1898년에 자살하려고 생각하면서 유언 대신에 이 그림을 필생의 대작을 그린 것이다. 여기에 유아에서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 그 일생이 그려진 주인공은 바로 화가 자신이었다.
누구나 고갱을 좋아하지만 나는 특히 그의 강렬한 빛깔과 놀라운 구도, 빛깔 사이의 대조가 아무리 쳐다보아도 지치지 않아 끝없이 끌려 들어가는 매력에 언제나 탄복한다. 그리고 그가 손으로 직접 새겨 만든 목각들(마오리 사람들의 상, 그릇, 지팡이 등)을 보면 그가 정말 천재라는 사실이 직감적으로 확인된다.
내가 그를 더 자세히 알게 된 것은 파리에서 박사 논문을 쓰던 도중 우연히 그가 쓴 책들을 보게 된 때였다. 우선 그가 타이티에 가서 듣고 산 이야기를 직접 글로 쓰고 그림을 그려서 출판한 ‘노아 노아’를 보고 너무 놀랐다. 그 시적이고 솔직한 문체와 다양한 빛깔의 그림이 충격적이어서 내 논문을 제쳐 두고 도서관에서 얼른 고갱의 책들을 빌려서 부지런히 읽으며 감격했다.
그의 직선적이고 풍자가 가득 찬 문장이 나에게는 불문학의 대가들의 문체보다도 낫다고 생각되었다. 그가 쓴 미술과 문학에 대한 평론도 좋았지만 나를 울게 한 것은 그가 가족과 친구에게 쓴 편지들이었다. 거기에는 유럽을 떠나 멀리 타이티에 홀로 떨어져 사무치게 느낀 문화적 소외감과 고독, 아내와 자식들에 대한 그리움이 넘쳐나고 있다.
그가 사랑하는 외동딸 알린느가 갑자기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하느님을 부정하면서 아내에게 쓴 글은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그는 나날이 살아 갈수록 더 벌어지는 상처가 아물지 않는다고 했다. 이것은 건강의 악화, 극도의 가난과 함께 그 다음 해에 그가 음독자살을 기도한 원인이 되었다.
그가 남태평양과 마오리 문화를 택한 것은 워낙 “야만인”적인 자신의 기질도 있었지만 유럽에서 더 이상 찾을 수 없는 새로운 예술적 영감과 주제를 찾아 그것으로 그림을 그려서 유럽 화단에 돌아와 완전히 승리하려는 의도에서였다. 그를 아는 예술가와 지식인들 사이에서는 그의 천재성이 일찍이 높은 평가를 받았지만 일반 대중의 기호나 작품의 상품성에서 그는 실패하고 언제나 빚에 쪼들리며 의식주의 해결이 어려웠다.
증권 거래인의 경력을 버리고 뒤늦게 전문 화가로 출발한 그는 자기의 독창적인 세계를 창조하여 완전히 성공한 예술가의 길을 “원하기를 바란” 의지의 사람이었다. 그는 일찍부터 경험에서 나온 자신의 미술 이론을 동료 화가들에게 가르쳤고(뽕따벤 화파) 색채의 대비에 대한 그의 주장을 실천으로 옮겼다. 그의 강한 성격과 고집, 확고한 이론은 그를 어디서나 지도자로 만들었지만 그를 이해하지 못하는 가족과 일반인에게는 존경을 받지 못했다.
그는 자기의 능력으로 부양할 수 없는 가족 곁을 떠나 생활비가 적게 들고 자연과 인심이 소박하고 아름다운 곳을 찾아다니며 작품을 만들었다. 언제나 생활이 불가능했음에도 불구하고 역시 그의 큰 과업은 모든 고난을 감수하며 예술 창작을 계속해서 해 나간 일이었다. 그는 자신의 길을 예수의 수난에 비겼다. 나중에는 부러진 발과 다리를 못 쓰고 영양실조와 습진, 매독, 심장병으로 눈이 안 보이기까지 했다.
감옥에까지 갇혔던 말년의 고통으로 그는 55세에 마르끼즈 섬에서 타계했지만 죽기 전 겨우 얼마동안은 화상으로부터 정기적인 연금을 받았다. 그는 드디어 인정을 받았던 것이다. 사회에서 받은 몰이해와 냉담함을 그는 글로도 맹렬히 비판했지만 역시 아름다운 그림과 도자기, 조각을 많이 만들어 놓음으로써 수난 속에서 그가 “원하기를 바란”대로 승리한 것이었다.
이연행 / 불문학자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