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기 어려운 이야기지만 미국에도 한화의 김승연 회장 비슷하게 경호원을 데리고 다니며 말썽을 일으킨 재벌이 있었다. 자동차 왕 헨리 포드 1세다. 포드는 자기 의견에 반대하는 참모는 쫓아냈을 뿐만 아니라 경호원을 시켜 두들겨 패기까지 했다. 헨리 포드의 경호실장은 악명 높은 해리 베넷이라는 건달이었는데 베넷은 포드가 싫어하는 중역의 목을 잡고 정문 밖으로 끌고 나간 적도 있었다. 포드가 경호팀을 이용해 공포 분위기를 조성한 이유는 노조가 생기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
회장이 밑에 있는 사람들의 의견을 듣지 않고 모든 것을 직접 결정하면 조직이 일사불란해지기는 하지만 통풍이 되지 않아 숨이 막히는 법이다. 이렇게 되면 회장의 가는 길이 잘못된 방향인 줄 알면서도 참모들이 입을 다물어버린다. 말해 봤자 실현되지도 않거니와 미움만 사기 때문이다.
당태종의 치세원칙을 기록한 정관정요에 따르면 이런 신하들은 ‘간신’(姦臣)이라고 부르지 않고 ‘유신’(諛臣)이라고 부른다. ‘유신’이란 주군의 말은 무엇이든 옳다하고 주군의 행위는 모두 선하며 정의롭다고 말하면서 주군을 기쁘게 해주는 참모들을 말한다.
반면 ‘간신’은 외관은 바르지만 마음이 사악하여 자신과 친한 사람은 장점만 부각시키고 단점은 보이지 않게 덮어주며 미운 사람에 대해서는 그의 단점만을 돋보이게 하고 장점은 은폐하여 상벌이 잘못 내려지게 하는 냉혈적인 신하다.
회장의 성격이 너무 강하면 회사 내에 ‘유신’들이 생겨나는 법이다. 회장의 아이디어가 그릇된 것인 줄 알면서도 회장을 격려하다 보니까 일이 더 미로에 빠져들게 된다. 1등을 달리던 포드자동차가 2등인 GM에 눌리는 역사적인 수모를 당한 것도 헨리 포드의 아집을 유신들이 막지 못했기 때문이다. 자동차의 기어를 자동으로 만들 때가 됐음에도 불구하고 포드는 수동기어만 주장해 자동기어를 만들어낸 GM에 결정타를 얻어맞게 된다.
승승장구하던 나폴레옹이 왜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는가. 그는 모든 것을 직접 챙겼다. 부하들에게는 자신을 따를 것만 강조했다. 나폴레옹이 러시아를 침공하기로 결정했을 때 그것이 무리한 전쟁인 줄 알면서도 참모들은 입을 다물었다. 결국 30여만명의 전사자를 낸 러시아 패전이 나폴레옹의 몰락을 가져왔다. 히틀러도 마찬가지다. 그의 소련 침공작전에 많은 참모가 고개를 갸우뚱했지만 아무도 히틀러를 막을 수가 없었다.
용장은 지장을 이기지 못하고 지장은 덕장을 이기지 못하는 법이다. 충성과 의리만을 강조하는 회장은 용장 스타일이며 리더라기보다는 보스에 가깝다. 보스 체제의 치명적인 단점은 보스가 곤경에 처했을 때 조직이 그의 얼굴만 쳐다본다는 점이다. 위기인데도 아이디어가 없다. 조직에 자생능력을 키우지 않았기 때문이다.
1996년에 한국의 상공회의소가 성공한 기업과 망한 기업의 흥망성쇠 원인을 분석해 발표한 적이 있다. 그 내용을 보면 성공한 기업은 공통점이 인재양성과 자율적 책임경영이고 망한 기업은 경영자의 과시욕과 독단으로 나타나 있다.
한화의 김승연 회장이 왜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 막게 되었는가. 그의 지나친 독단과 보스기질이 참모들을 유신(諛臣) 체질로 만들어 놓았기 때문이다. 용장 시스템의 한계다.
<이 철 / 이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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