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악관이 외국 원수를 위해 베푸는 디너파티를 스테이트 디너파티라고 부른다. 그 중에서도 ‘화이트 타이’ 스테이트 디너는 모든 예절이 동원된 국빈 중의 국빈을 위한 만찬이다. ‘화이트타이’ 디너는 흰색의 넥타이를 해야 하고 상의 안에 반드시 흰 조끼를 받쳐 입어야 한다.
지난 7일 부시 대통령이 엘리자베스 여왕에게 베푼 만찬회가 바로 ‘화이트 타이’ 디너였었는데 그 내용이 흥미롭다. 보통 외국 원수를 위한 환영만찬은 음식이 4코스로 되어 있으나 백악관은 이례적으로 5코스의 메뉴를 선택했다. 퍼스트레이디인 로라 부시의 말을 빌리면 “화이트 타이 디너는 부시 대통령의 경우 처음이며 마지막이 될 것”이라고 한다. 이는 엘리자베스 여왕을 위한 파티가 부시의 재임 중 백악관 최고의 파티라는 의미가 된다. 여왕을 위한 만찬에서는 어떤 에티켓이 강조되었을까.
먼저 파티 참석자들은 여왕과 여왕의 부군 필립공의 호칭을 명심할 것을 백악관 비서실은 강조했다. 여왕은 “Your Majesty”라고 불러야 한다. 여왕을 “Your Royal Highness”라고 부르면 결례 중의 결례다. 왕자들을 “Your Royal Highness”라고 부른다. 필립공도 왕자 서열이므로 “Your Royal Highness”로 불린다. 그리고 악수는 여왕이 먼저 손을 내밀지 않는 한 절대 손을 내밀면 안 된다.
그런데 뉴스에서 여왕의 행차를 유심히 살펴보면 재미있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필립공은 여왕의 남편이지만 공식석상에서는 절대 여왕과 나란히 걸어가지 않는다. 5미터 떨어져서 따라가야 한다. 여왕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서다.
백악관 비서실은 이번 국빈만찬에서 초청받은 사람들이 엘리자베스 여왕이나 퍼스트레이디 로라 여사와 같은 색의 옷을 입고 올까 봐 미리 체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번은 케네디센터에서 열린 파티에 퍼스트레이디인 로라 여사가 참석했는데 로라 여사와 똑같은 색에 비슷한 디자인의 옷을 입은 여성이 3명이나 되더라는 것이다. 백악관은 이번에 퍼스트레이디가 입는 옷은 오스카 드 라 렌타가 디자인한 하늘색 드레스임을 사전에 분명히 했다.
미국 대통령들의 회고록을 보면 “백악관 생활에서 가장 잊지 못할 추억의 순간”에 “엘리자베스 여왕과 함께 디너를 했을 때”를 꼽는다. 레이건도 그랬고 포드와 부시(아버지)도 그랬다. 포드 대통령은 엘리자베스 여왕과 춤을 춘 것을 “생애 최고의 영광”이라고 말했을 정도다. 네덜란드 여왕도 미국을 방문한 적이 있는데 백악관이 ‘화이트 타이’ 디너를 베푼 적이 없다. 여왕이라고 다 같은 여왕이 아니다.
미국의 상류층은 왜 영국 여왕을 이렇게 흠모하는 것일까. 이번 엘리자베스 여왕을 위한 만찬회 참석자들의 면모를 보면 대부분 미국의 상류층 WASP임을 느낄 수 있다. WASP은 어떤 사람들인가. 원래 영국에서 살기 어렵기 때문에 미국에 이민 온 사람들이다. 이들은 영국계지만 귀족 출신은 아니다. 따라서 영국 왕실에 대해 동경심을 갖고 있고 왕족 콤플렉스 같은 것이 조금 있는 사람들이라고 보면 여러 가지 의문이 풀린다. 미국 WASP의 예의범절이 영국의 귀족 예의범절과 너무나 똑같다. 엘리자베스 여왕에 대한 광적인 열광은 미국 WASP의 “이루지 못한 꿈”의 잠재의식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이 철 / 이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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