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경제의식’확산
브루클린 디트머스 팍에서 부동산 에이전트로 일하는 카지 호세인은 최근 고객에 전화를 걸어 매물로 나온 집에 대해 설명했다. “복스 팝에서 한 블럭 떨어진 곳에 위치한 집 입니다. ‘복스 팝’ 아시죠?” ‘복스 팝’은 이 곳의 명물이다.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이다. ‘복스 팝’은 단순히 커피를 파는 곳이 아니다. 주민들의 쉼터이다. 더욱 주목받는 이유는 국제 경제가 돌아가는 상황을 민감하게 주시하고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매장에 커피 메뉴가 눈에 잘 띄게 전시했을 뿐 아니라 그 이름도 눈길을 끈다. 공정한 거래를 주창하듯 버젓이 나붙은 ‘페어 트레이드’(fair trade) 음료가 그것이다.
커피·과일·의류 등 원산지 일꾼들에 수익 배분 강조
1999년 이후 커피 재배 농가에 수익 6천만달러 더 안겨
브루클린 카페 ‘복스 팝’ 공정거래 캠페인 앞장
커피 메뉴에도 ‘페어 트레이드’등장, 이젠 마을 명소로
3달러짜리 커피 한잔. 소비자들은 비싸다고 하지만 정작 아프리카 원산지 노동자들은 이 원료를 생산하면서 노임으로 3센트를 번다. 에티오피아 농장에서 일하는 주민들
’복스 팝’이 맘에 쏙 들어 디트머스 팍으로 이사했다는 윌로우 포도어(29)는 “커피가 공정한 무역에 의해 거래돼야 농부들에게 좋다. 그리고 우리 커뮤니티에도 유익하다”고 강조했다. 유기농이니, 동물을 잔혹하게 도살하지 않은 육류니 하는 광고가 강조되는 시대이다. 특히 새로운 풍조에 민감한 소비자들은 국제 경제 사정을 커피에 가미한 복스 팝의 기발한 아이디어에 매료되고 있다.
공정거래 윤리 캠페인은 미 동부에서 출발해 지금 서부로 번지고 있다. 진보적인 정치 분위기가 젊은 세대들의 의식과 어우러져 한바탕 바람을 일으킬 조짐이다. 뉴욕 공정거래연합 회원 스캇 코디는 뉴욕 시에서 커피, 차, 포도주, 의류 등 물품을 거래하는 소매상들이 지난 3년 새 25개에서 수백 개로 증가했다고 전했다.
공정무역거래 표시가 붙은 제품들은 아시아, 남미, 아프리카 등 원산지 노동자가 적정한 임금을 받을 수 있도록 가격이 산정된다. 농부나 노동자의 기본 생활권을 보장하기 위함이다.
그 대신 선진국 소비자들이 이를 반영한 가격을 이해해야 한다는 전제가 서 있다. 복스 팝 카페에서 커피를 한 잔 마시더라도 원산지의 농부와 노동자들을 생각하게 하고 이들에게 재정적으로 조금이나마 도움을 주고 있다는 뿌듯함을 느끼게 한다.
공정거래확인 표시를 부착해주는 캘리포니아 오클랜드의 비영리단체 트랜스페어 USA에 따르면 공정거래 커피가 미국에서 가장 급속도로 성장하는 기호품이 되고 있다. 공정거래 프로그램 덕에 1999년 이후 원산지 농부들의 수익이 6,000만달러나 증가했다.
예전에는 공정거래 품목에 대해 고객들의 관심이 미지근했었다. 그러나 집중적이고 효율적인 마케팅 전략에 힘입어 제품 이미지가 많이 제고됐고 고객의 반응도 덩달아 좋아지고 있다.
지저분한 옷을 입은 청소년들이 파는 물건이 아니라 단정하게 차려입은 종업원들이 서브하는 정갈한 제품으로 탈바꿈해가고 있다. 그리고 지구촌의 어려운 이웃을 생각하면서 즐길 수 있다는 점도 강점이다.
의류도 마찬가지이다. 고도성장을 구가하고 있는 의류체인점 아메리칸 어패럴(American Apparel)은 업계에서 임금수준이 높은 것으로 유명하다. 제 3세계에서 힘들게 일하는 노동자들의 소중함을 인식하고 이들의 권익옹호를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제품 광고도 멋진 모델을 등장시켜 초현대식으로 만들었다. 제값을 받고 팔아 수익을 노동자들에게 나누겠다는 전략이다.
브루클린의 디트머스 팍에 있는 ‘복스 팝 카페’(Vox Pop Cafe)는 커피와 국제경제 사정을 혼합한 묘한 분위기로 주목받고 있다
공정거래 운동은 1980년대 유럽에서 시작됐다. 꽃, 축구공들이 공정거래 품목으로 지정됐다. 터무니없이 싼 가격은 소비자들에겐 좋을지 모르지만 이를 만드는 노동자들의 노동착취를 수반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약자에 대한 글로벌 인식제고에 힘썼다.
1998년 인권운동가들이 창설한 트랜스페어 USA는 공정거래 증서를 받은 회사들이 원산지 농부와 노동자들로부터 물건을 수입할 적정한 가격을 지불하는지에 대하 지속적으로 감시해 왔다. 이들이 제대로 돈을 받아야 자녀들을 대학교에 보내고, 커뮤니티에 병원이나 학교와 같은 중요 시설들을 마련할 수 있는 까닭이다.
일부 업계 소식통에 따르면 공정거래 프로그램에 가입한 기업들 가운데도 여전히 공장노동자와 농부들의 노동력을 마구 사용하는 경우가 있는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1993년 대학에서 영문학 학위를 취득한 뒤 복스 팝을 만든 샌더 힉스(36)는 킹코스에서 일했었다. 당시 노조를 결성하고 노동자들의 공동 권익보호에 앞장선 경험을 토대로 그의 노동인권 캠페인에 불을 댕겼다.
그래도 아직 갈 길은 멀다. 공정무역 프로그램이 확산되고 있다고 하지만 미국 기업들도 불법이민자들에게 최저임금에도 미치지 못하는 임금을 주면서 노동을 착취하는 사례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뉴욕타임스 특약-박봉현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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