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관련 얘기를 드리려 칼럼을 쓰는 도중에 버지니아텍 비극에 대한 미주 한인사회와 본국의 반향이 언론에 보도되기 시작했다. 심리와 상담 전문가 여러분들의 좋은 얘기도 있었고 학부모들의 걱정도 이해할 수 있겠다. 그러나 사건을 보는 전체적인 눈도 그렇고, 젊은 우리 미주 한인 청소년들의 마음가짐에 대해서 좀 지나친 견해들이 많아서, 대학에 몸을 담은 사람으로서 한 말씀 드리려 한다.
먼저 우리 기성세대에서는 당분간 여러 가지로 주류사회와의 관계에서 말조심이 필요할 것 같다. 물론 전문적인 수준에서 문제의 핵심을 놓고 토론을 하는 자리라면 몰라도, 일반인들이라면 너무나 예리한 문제라서 얘기를 꺼내기가 쉽지 않다. 이런 비극은 쉽게 얘기할 수 있는 성질이 아니다. 그러면 쉽게 말을 꺼내지 말고, 조용히 이 슬픔을 미국민 전체와 함께 나누는 마음으로 지내야 할 것 같다.
어느 사회이건 여기저기에서 문제가 생길 수 있는 것이고, 이번 사건의 범인처럼 못난 사회구성원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본국에서 걱정하는 것처럼 전체 한인들이 책임을 질 일도 아니고, 그 범인이 한국을 대표하는 공무원이나 군인도 아니고, 여기에서 자란 학생이니만큼, 같은 한인이라는 부끄러움과 죄송함을 느끼면서 지내는 것이 도리라고 본다.
미국사회는 다민족사회로서 이제 어느 정도 성숙해서, 이런 일들로 다른 한인들을 해치고 할 수준은 아니다. 그러나 우리가 진정으로 슬퍼하는 마음으로 희생자들을 위한 여러 가지 주류사회 행사에 참가하는 것이 기성세대의 의무라고 본다. 우리 대학 여러 캠퍼스에서도 많은 미국 다른 대학과 같이 희생 학생들과 교수들을 위한 기도회가 있었는데, 종교에 상관없이 모두가 상처 난 마음들을 어루만질 기회가 되었다. 그리고 이런 행사에 많은 아시안의 얼굴을 보이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게 사실이다.
기성세대는 성숙한 이들이라 그래도 이런 비극을 당해서 지혜롭게 대처해 나가겠지만, 어린 청소년들, 특히 아들들을 가진 부모들은 좀 더 조심해야 할 것 같다. 안 그래도 어려운 나이들인데, 이번 이일로 인해서 한인 청소년들은 무척 어려워졌다. 전문가들이 여러 가지 얘기들을 했으나, 필자가 생각하기에 가장 좋은 방법은, 학교에서 마련한 자리를 빼고는 아예 딴 학생들과 이번 일에 대해서 얘기를 하지 않는 것이다.
조심스런 얘기라 정답을 찾기도 쉽지가 않고, 민감한 신경이 쓰이는 화제는 한마디만 삐끗해도 서로 감정을 상하기 쉽다. 특히 자라나는 청소년들은 감성이 예민할 때라 아예 이번 비극을 화제로 삼지 않는 방법이 가장 안전하다. 청소년들이 무슨 말을 꼭 해야 한다면, 범인이 벌써 여러 가지 정신질환에 가까운 행동을 보인 것이 드러난 만큼, “He was a wacko” 한마디만 하고 얘기를 피하는 것이 좋다.
그러나 우리 어린 세대들이 이번 일로 인해서 계속 풀이 죽어 지내는 것도 안 될 일이다. 이번 일은 어느 민족에서도 일어날 수 있는 것이고, 미국에서 교육을 받는 아이들이라면 아마 우리 기성세대에서 생각하는 것보다 더 현명할 가능성도 많다. 세대에 상관없이 의연히 이 비극을 지내가야 한다. 슬프지만 주눅이 들어서는 안 된다는 마음이다.
이번 일로 본국에서는 너무 호들갑을 떠는 것 같다. 미국에서 공부하는 아이들을 불러들여야 하는가, 한인들이 보복을 당하지는 않을까, 한미관계가 어려워지지 않을까, 이런 쓸데없는 얘기들을 하는가 하면, 어느 일간지에서는 이번 일이 생기고 나서 범인이 한인이라는 게 밝혀지기 전에는 만화로 풍자까지 하는 어처구니없는 일들이 벌어졌다. 나중 그들도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는 급히 방향을 바꾸었으나, 너무나 경박한 지금 본국의 세태를 다시 보는 것 같아서 어두운 마음이었다.
이번의 비극도 우리 미주 한인사회가 성숙해 가는 과정에 있는 테스트라고 보고 싶다. 어찌 좋은 일들만 있겠는가. 이 슬픈 날들을 젊은이들과 함께 의연히 지내 나가자.
이종열 페이스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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