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지니아텍 사건은 비록 총기문제 등 사회적인 문제의 심각성을 다시 한번 일깨운 사건이었지만 동시에 우리 한인들에겐 풀어야 할 숙제를 남기고 있다.
과연 어떻게 성실히 일하는 두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가 이렇게 끔찍한 망상과 범죄를 계획할 수 있었을까에 우리는 충격을 금할 길이 없다. 왜냐하면 그의 부모도 많은 우리 1세 부모들과 같은, 성실하고 자녀를 사랑하는 이민 가정의 부모였을 것이기 때문이다.
많은 한인들은 무엇보다도 종종 우울증에 대해 자신과 너무도 거리가 먼 문제라는 인식을 하는 경향이 있다. 우울증이란 생물학적으로는 두뇌의 화학물질의 불균형 상태를 의미하지만, 정서적으로는 어려서부터 각종 내외부적 학대나 충격으로부터의 정서적 상처가 표현되지 못하고 억압 누적된 분노를 의미한다.
인간 관계적 입장에서 보면 자기의 입장에 서서 자기를 대변하고 이해해 줄 사람이 없는 상태를 의미한다. 아무리 그 강도가 심한 고통이라도 당시 누군가와 함께 나눌 수만 있다면 훨씬 가볍게 느껴질 수 있다.
둘째, 자녀를 치료로 이끌려면 부모들이 먼저 강해지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자녀의 우울증이나 비행을 바라보는 부모들도 사실 어떻게 해야 할지 속수무책인 경우가 많다. 그도 그럴 것이 부모들 자신도 자녀를 건강하게 훈육할 힘과 지혜는 차치하고라도 우울증을 앓거나 비행을 저지르는 자녀에 대해 자신이 갖는 죄책감으로 인해 질질 끌려 다니며 그들의 문제를 방치 내지 심화시키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부모들은 부부 각자의 분업식 자녀교육을 통해 아버지들의 경우 가정에서 자녀와의 대면을 피하고 지나치게 일에만 몰두하거나, 간헐적인 분노 폭발을 통해 자신의 감정을 표출한다. 반면 어머니들의 경우에는 자녀에 대한 무조건적 사랑이란 이름으로 지나친 보호나 간섭 등을 통해 자녀를 정서적으로 미성숙하게 길들이는 경우가 많다.
셋째, 상담치료가 필요했던 조승희군 문제에 대한 그 동안의 버지니아텍의 안일한 대응에서 보듯이 자녀의 치료를 학교 등 타 기관에만 전적으로 의존하는 행위는 절대로 현명한 방법이 아니다.
이러한 정서적인 상처에서 오는 우울증을 치료하는 데에는 어려서부터 교육해 자녀들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부모가 열쇠를 쥐는 것이 현명한 일이다. 특히 자녀의 치료를 주로 남에게 맡기는 행위는 정작 부모 자신은 자녀의 치료에 참여하기를 포기하는 행위이고 따라서 자녀가 부모에게 당하는 또 한 번의 배신일 수가 있다. 부모와 자녀가 치료행위를 통해 정서적으로 함께 연결이 되면 우울증은 점차 사라지게 된다. 이는 부모의 노력하는 모습을 통해 결국 자신의 문제가 혼자만 외롭게 헤쳐 나가야 할 문제가 아니라는 위안을 갖게 되기 때문이다. 부모와 정서적으로 연결된 아이들은 결국엔 자긍심과 자신감을 회복하고 친구들과도 건전한 관계를 만들어나갈 수 있다. 그러면 왕따 위험도 점차 사라지게 된다.
교육을 위해 이민을 결정한 많은 우리 부모들은 이번 일에 망연자실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이번 일을 귀중한 자녀 교육의 지혜를 얻는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을 수 있다.
특히 풀어야 할 숙제는 우리 부모들이 하루속히 정신병자만이 상담을 받는다는 고루한 인식으로부터 해방되는 일이다. 왜냐하면 외로움과 우울증의 고통 속에서도 그동안 자발적인 상담을 회피해 온 조승희군의 경우에서 보듯이 예방적 상담은 오히려 건강한 사람들이 훨씬 수월하게 시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조승희군이 우울증 증상을 보이기 시작한 초기에 좀 더 적극적으로 부모와 함께 상담을 통해 치료 받을 수 있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총기 구입을 무작정 허용하는 사회이든 자녀와 자신의 정신건강을 등한시 하는 가정이든 결국 우리는 뿌린 대로 거두게 되는 것 같다.
롤랜 김 임상심리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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