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나가던 블루칼러들 ‘엑소더스’
케네스 두리틀(54)은 GM 조립라인의 한 팀을 이끌었던 자동차 전문가이다. 그는 자신이 하던 일에 자긍심을 갖고 있었다. 그런데 그가 얼마 전 회사를 그만 두었다. 명퇴했다. 미국 3대 자동차 직원들 가운데 최근 명퇴한 8만여명의 대열에 끼었다. GM은 두리틀이 일하던 공장을 폐쇄하기로 했다. 회사는 두리틀에게 다른 공장에서 일할 기회를 주었다. 그러나 두리틀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회사측이 팀장이 아니라 일반 조립공을 제안했던 것이다. GM에서 33년 넘게 일해 온 두리틀은 아직 은퇴할 나이는 아니지만 고민 끝에 “그렇게는 못 하겠다”며 박차고 나왔다. 그러나 다른 자동차 직원들이 두리틀과 같은 것은 아니다. 지난해 GM과 포드에서 명퇴 신청했던 3,000여명은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회사측의 제안을 수락하고 그냥 눌러 앉기로 했다. 그래도 자동차회사 직원들의 엑소더스는 대세이다. 가능하다면 보다 안정되고 전망 있는 자리를 찾아 옮기는 추세이다.
<자동차 산업이 휘청거리면서 미시간의 자동차 노조원들이 대거 이탈하고 있다. 1930년대 대평원 지역의 농부들이 먹고살기 위해 농토를 버리고 캘리포니아로 이주해 온 대이동‘더스트 보울’을 연상케 한다.>
최근 8만여명 명퇴, 새 일자리 찾아 대거 이주
몇대째 이어온 일자리 갑자기 사라져 ‘정신적 충격’
퇴직 후 수입보전 위해 파트타임… 재취업 교육도
지역 경제에 큰 타격 커뮤니티 공동화 우려까지
철새 이동처럼 진행되고 있는 이 현상은 여러 가지 문제를 파생하고 있다. 재정적인 불안정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본의 아니게 이사가는 가정이 부지기수이다. 마음 편안하게 지내던 이웃들이 하루아침에 헤어진다. 기존의 커뮤니티가 붕괴할 조짐마저 보이고 있다.
회사를 그만두었거나 조만간 퇴직하려고 결심한 직원들은 이구동성으로 “근무환경이 점점 험악해지고 있다”고 했다. 70, 80년대 구가하던 임금, 베니핏은 이제 과거의 얘기가 됐다.
철강, 조선산업 등과 함께 막강 노조를 자랑하던 자동차 노조도 그만큼 힘을 잃어가고 있다. 직원들은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걱정에 휩싸여 있다.
단단하고 작은 체구의 두리틀은 지난해 회사를 그만둔 이후 생각이 많아졌다. 이혼의 쓰라림을 안고, 다 큰 네 자녀를 둔 두리틀은 랜싱에 있는 아파트와 시 인근의 호숫가에 사 둔 작은 땅에 주차한 트레일러를 오가며 생활한다. 그는 요즘 랩탑과 친구가 되다시피 했다. ‘나의 인생 경험’을 주제로 3권짜리 책 원고를 쳤다. 연금은 회사 다닐 때 받던 연봉의 60% 수준이다. 부족분을 메우기 위해 시어스에서 시간당 10달러를 받고 매주 20시간 일한다.
2008년까지 진행될 자동차 회사들의 명퇴계획은 이미 연합자동차노조와 타결된 상태이다. 회사는 명퇴직원들에게 퇴직금을 주고 다른 일자리도 알선해 주려고 노력하지만 오랜 세월 몸담았던 직장을 떠나야 하는 직원들의 마음을 달래기엔 역부족이다.
1980년대 초 이후 미국에서 3,000만개의 일자리가 없어지고 5,000만개의 일자리가 생겨났다. 그렇지만 재취업자 가운데 3분의1만이 전 직장의 임금수준을 유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재취업이 비교적 쉽다고 해도 소득에 큰 구멍이 생긴다는 것이다. 대다수는 임금 삭감 효과를 절감하고 있다.
미시간의 전출은 심각한 상황이다. 2005년 2만9,700명에서 지난해 4만2,300명으로 껑충 뛰었다. 이러다간 주의 경제에 상당한 타격을 줄 수 있다. 제니퍼 그랜홀름이 나서서 모든 고교졸업생들에게 대학진학 장학금을 주겠다고 공언할 정도로 사태가 심각하다. 자동차 산업으로 먹고 사는 디트로이트, 랜싱, 더번 등지에서 목격되는 주민 전출현상이 이를 입증한다.
문화 및 정신적 충격도 대단하다. 한 주정부 관계자는 “자동차 직원들은 몇 대에 걸쳐 이를 생업으로 삼아왔다. 갑자기 일자리가 없어지는 것은 견디기 힘든 일이다”고 했다.
<다임러크라이슬러에서 일하는 제프리 비탈은 회사가 제시한 명퇴조건 ‘10만달러와 6개월 의료보험’안을 놓고 고민하다가 수락하기로 마음을 굳혔다. 비탈이 아들 조수아와 놀아주고 있다.>
이 관계자는 최근 자동차 산업 엑소더스를 1930년대 중부 대평원 지역의 농부들이 먹고 살길을 찾아 캘리포니아로 대거 이주한 ‘더스트 보울 이주’(Dust Bowl migration)에 비유했다.
미래에 대한 불안감은 자동차 직원들 거의 모두에게 드리워져 있다. 다임러크라이슬러에서 일하는 제프리 비탈(39)은 회사가 제시한 명퇴조건 ‘일시불 10만달러와 6개월 의료보험’을 수락하기로 했다. 재취업을 해도 현재 받는 연봉이나 베니핏보다 나을 수 없지만 그래도 자동차 회사를 떠나기로 했다. 지금이라도 명퇴조건을 받아들여야 그나마 ‘목돈’을 챙길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회사 사정이 더 나빠지면 명퇴조건이 한결 형편없어질 것이란 판단을 했다. 비탈은 중퇴한 대학을 마치기로 했다. 올 12월이면 학사학위를 받는다. 물리치료사로 새 인생을 설계할 계획이다.
치열한 자동차 산업의 경쟁 속에서 비틀거리는 미국 자동차회사 직원들의 오늘과 내일은 안개 속에 있다. 과거 블루칼러로서는 넉넉한 생활을 해 온 자동차 직원들은 좋았던 옛 시절만 떠올리면 투정할 때가 아니다. ‘내일’을 알 수 없는 형국이다. 이들은 자나 깨나 생존을 위한 변신에 몰두해 있다.
<뉴욕타임스 특약-박봉현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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