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생각 가진 이웃과 함께…
게일라 그룸(50)이 자기 침대에서 소리 질러서 고양이들을 쫓아내고 옷도 입지 않은 채 마당을 어슬렁거려도 이웃 사람들은 상관하지 않는다. 그녀가 1만4,000달러를 들여 납작한 판잣집을 지어 입주했어도 상관하지 않는다. 이웃 노인 한명은 매일 아침 그녀에게 전화해 자기가 아직 살아있다고 알린다. 오리건주 포틀랜드 출신의 책 편집인 그룸이 사는 곳은 테네시주 서머빌의 ‘로시난테’. 늙어가는 히피들을 위해 디자인된 커뮤니티다. 지금은 10여 가구에 불과하지만 증가중인 이곳의 주민들은 모두 그녀와 비슷한 판잣집에서 그녀와 비슷한 사고방식과 생활태도로 살고 있다. 1960년대에 그랬던 것처럼 남은 여생도 자연 친화적으로 살려고 모인 사람들이다.
전통적인 노인촌 탈피… 끼리끼리 모여 생활방식 공유
베이비붐 세대 은퇴 가속화 개발업자들도 서서히 관심
<뉴멕시코주 샌타페의 ‘레인보우 비전’에서 콘도 구매를 자축하는 로저 벅스트롬과 배리 볼츨리>
“여기에서 나는 진짜 인간이 됩니다. 돈 걱정 없이 자유로운, 보호받는 느낌이죠. 숲속의 작은 판잣집에서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일년에 6,000달러 가지고도 백만장자처럼 살 수 있어요”
인생의 황금기에 이르러 늙어갈 곳을 선택하는데 있어 골프나 기후보다는 관심사나 사고방식을 공유할 수 있는 이웃을 찾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있다. 남녀 동성연애자들을 위한 주택단지가 캘리포니아부터 플로리다까지 전국적으로 개발되고 있으며 지속적인 예배와 친교의 삶을 원하는 은퇴한 유대교 신자, 가톨릭 교도, 기타 기독교도들은 워싱턴과 뉴저지의 종교 중심 커뮤니티에 단독 주택이나 콘도를 마련할 수 있다. 은퇴한 파일럿들이 모여 사는 곳에는 유도로와 격납고가 설치돼 있다.
주거 전문가들은 이와 같은 틈새 커뮤니티들이 더 많이 시장에 나올 것으로 전망한다. 이제 은퇴연령에 달한 베이비붐 세대들이 자기 부모 세대들이 이상적으로 생각했던 전통적인 노인촌에 대해 별로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베이비붐 세대와 그 자녀들은 이제까지 자주 이사를 다니고 전국에 흩어져 살아왔기 때문에 은퇴할 때가 되면 자신과 관심사를 공유할 수 있는 동년배들이 사는 곳을 찾게 될 것이라고 55세 이상 연령층의 주거문제를 연구하는 단체인 ‘제론톨로지컬 서비시즈’ 대표 마리아 드와이트는 말하고 있다.
“한 마을에서 태어나고 자라 온 마을 사람들을 알고 지내는 일은 시대는 지났습니다. 지난 몇십년 사이에 커뮤니티의 개념이 크게 바뀌면서 사람들은 사람을 사귈 방법을 찾고 있습니다. 가만히 앉아서 늙는 것을 한탄이나 하는 대신 자신과 같은 취미를 가진 사람들과 함께 관람했던 연극이나 여행갔던 곳에 대해 이야기하며 지내기를 원하는 것이지요. 이제까지의 주거양식에서는 그런 옵션을 찾을 수 없기에 스스로 유유상종할 사람들을 찾아 나서는 것입니다”
믿을 만한 통계수치는 찾기 어렵지만 비슷한 생각을 가진 개인들로 구성된 커뮤니티를 추적하는 온라인 잡지 Cohousing.org 발행인 존 파슨스에 따르면 채식주의나 환경 보호 등 특정한 관심사를 공유하는 주민들로 이루어진 공동체에 거주하는 사람은 미국과 캐나다에 대충 6,000명 정도 된다. 그중 지속적인 고등교육 수혜 욕구를 중심으로 한 인디애나주 웨스트 라파이옛의 ‘유니버시티 플레이스’ 주민들은 퍼듀 대학에서 클래스를 택할 수 있다.
<‘팜 코뮨’의 창시자 스티븐 개스킨(오른쪽)과 ‘팜’ 산하 나이들어가는 히피들의 공동체인 ‘로시난테’ 주민 게일라 그룸>
이제까지 세상을 자기 식으로 사는데 익숙한 데다 이제 은퇴해 몇십년을 더 살아야 할 베이비 붐세대가 이러한 추세를 받아들이는 것은 당연지사라 할 수 있는데 아직까지 골프장을 낀 대형 단지 개발에 익숙한 큰 개발회사들은 베이비 붐 세대의 부모들에 집중하고 있지 틈새 커뮤니티에는 관심을 기울이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내 베이비붐 세대가 7,800만명이고 그중 8,000명 가량이 매일 60세 생일을 맞고 있는 형편이니 사정은 달라지지 않을 수 없어 보인다.
그 와중에서 틈새 커뮤니티 건설을 도맡고 있는 소규모 개발업자들 중에는 입주자들과 취미나 관심사를 공유하는 이, 개발업자가 아닌 사람도 있다. 플로리다주 세인트피터스버그에 살며 은행에서 수석감정사로 일하는 조지 패터슨 같은 사람이 그 예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인 패터슨은 동료 신자들과 함께 은퇴해 살고 싶은데 마음에 드는 방법이 없었다. 그중에는 암 투병 같은 겁나는 일을 겪고 있는 사람도 있어 각자 독립해 살지만 서로 돌봐 줄 수 있고 필요한 이에게 봉사도 할 수 있는 가톨릭 공동체를 만들고 싶은 생각이 자꾸 깊어졌다. 그래서 5년 전쯤 몇명의 동료와 함께 비영리회사를 만들어 봉사에 중점을 둔 가톨릭 커뮤니티 건설 방안을 탐구하기 시작했다. 모든 것이 계획대로 된다면 패터슨의 그룹은 6개월 후에 플로리다주 중부의 레이크 알프레드 인근에 작은 공동체를 착공하게 된다. 1,000스퀘어피트짜리 주택 24채를 지어 최고 40명을 입주시킬 예정인데 24채 중 반은 가톨릭 학교에서 저임금을 받으며 일하는 사람등을 위한 저소득층용으로 15만달러 정도에 내놓을 예정이다.
뉴멕시코주 샌타페와 캘리포니아주 팜스프링스에서 ‘레인보우 비전’이라는 게이, 레즈비언 은퇴자 커뮤니티를 운영하고 있는 조이 실버는 단지 내에 집은 누구나 살 수 있지만 커뮤니티 서비스나 이벤트들이 게이와 레즈비언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므로 게이나 게이와 친한 사람들만이 구입을 원할 것이라고 말한다.
사실 늙은 동성연애자들을 위한 은퇴자 커뮤니티는 앞으로 가장 인기를 모을 수 있는 틈새시장. 작년 6월 샌타페 ‘레인보우 비전’에 입주한 로저 벅스트롬(77)은 “나를 배척하지 않는 곳에 사니까 참 좋다. 이런게 진짜 커뮤니티다”라고 말했다.
<뉴욕타임스 특약-김은희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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