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초 일때문에 한국에 잠시 다녀왔다. 나는 대대로 강북에서 나고 자란 소위 ‘강북출신’이다. 강남은 듣도 보도 못한채 지내다,
1988년 친구집이라고 따라간 곳이 강남이라고 했다. 생전 처음 가보는 동네였다.
친구말에 의하면 ‘1시간에 한번 오는 좌석 버스’를 타고 ‘한참 꾸벅꾸벅 졸다 보면 집에 온다’고 했다. 아파트들이 줄줄이 늘어서 있었다. 대치동이었다. 새집이라 좋긴하지만 뭐, 버스도 이리 없고 멀기만 한 동네라는 생각 뿐이었다. 그랬던 동네가, 강남이, 이제는 한국의 무서운 태풍지역이 되어버렸다.
신촌에서 택시를 탔다. 강남으로 향하는 택시 안에서 바깥풍경을 열심히 눈여겨봤다. 신촌 대학가, 서소문 빌딩가, 그리고 다리를 건너 강남으로. 압구정동을 지나 청담동으로 지나는 길들이 너무나 달랐다. 복잡복잡 판자촌에서 부촌으로 넘어온 듯한 기분이었다. 지나다니는 사람들도 행색이 달랐다. 얼굴빛도 달랐다.
택시운전사는 가는 내내 ‘한달 꼬박 일하고 100만원을 벌어 아이들 사교육비 내고나면 없다’고 신세를 한탄했다. 어떻게하면 외국에 나가 살아볼까, 하는 것이 요즘의 고민이라고 했다. 강북과 강남의 그림이 다른 것에 놀랐다는 내게 ‘택시 손님들도 강북과 강남은 다르다’고 대답했다. 백원이라도 꼭 챙겨가는 강북손님과 팁에 후한 강남 손님, 안녕하십니까라는 인사에 기분좋게 대꾸하는 강남손님과 무반응이라는 강북손님. 강남에 한번 들어오면 나가기 싫어한다는 강남사람들처럼 택시들도 한번 들어오면 나가지 않는걸까. 이른 오후부터 강남 대로와 그 넓게 트인 길들이 차들로 꽉 막힌다고한다.
강북에서는 뭘로 벌어먹고살까를 고민하는동안 강남에서는 ‘와인바’와 ‘브런치’의 유행이 지금 한참이라고 한다. 청담동의 한 카페에서 본 메뉴판에는 ‘브런치’라는 메뉴가 4만원이라는 엄청난 가격이었다. 대충 아침과 점심을 먹는 ‘아점’이 브런치로 둔갑하여 강남의 유행을 선두하고 있는 것이었다. 와인바 또한 그냥 와인이 맛있어서 즐기는게 아니라 돈있는 문화의 상징이었다. 강남은 정말 딴 세상이었다.
그런데 요새 들리는 강남의 아우성은 내가 짧게 보고 온 세상과는 맞지 않는 것이라 영 의아하기만 하다. 공시지가 6억이상 주택에 대해 보유세를 내게한다는 정책에 강남 부자들이 들고일어난다는 소식이다. 가만히 앉아서 집값이 오른 것에 대한 혜택만 보고 세금은 내지 않겠다니. 유지할 능력이란 비싼 동네에 살면서 와인과 브런치를 즐기며 명품관 백화점을 오가는 것을 의미하는게 아니다. 유지할 능력이란 그 주택을 보유하고 그 가치에 대한 세금을 납부하며 거기서 삶을 꾸려나갈 수 있는 것 아닌가?
날이 갈 수록 강남과 강북으로 나뉘고있는 서울의 현실이 짧은 일정 내내 마음을 괴롭혔다. 허허벌판 땅을 국민의 세금으로 개발하고 발전시켜 그 혜택을 본 사람들이 오직 혜택만 갖겠다는 발상, 집값 오른 건 내돈이라는 이기주의, 그럴싸한 말과 유행으로 휘감은 겉멋…이번 한국행의 뒷맛은 이런 씁쓸함뿐이다.
<유정민> 텐커뮤니케이션스 카피라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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