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을 열면 세상이 보인다’
▶ 「뿌리 깊은 나무」
움베르트 에코의 책 중에 「장미의 이름」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중세 수도원에서 발생한 연쇄살인 사건을 추적하는 내용의 이 책은 숀 코네리 주연으로 영화로 제작되기도 하였습니다.
예수의 혈통과 관련된 내용을 다룬 댄 브라운 원작의「다빈치 코드」는 톰 행크스 주연으로 영화화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에코의 「장미의 이름」과 댄 브라운의 「다빈치 코드」를 동시에 연상시키는 소설이 있습니다.
한국에서 작년에 출간되어 2006년 네티즌이 올해의 책으로 선정한 「뿌리 깊은 나무」가 바로 그 책입니다.
뿌.리.깊.은.나.무. 어디서 많이 들어 본 말입니다. 이 말은 조선왕조의 4번째 왕이었던 세종대왕이 편찬한 「용비어천가」의 첫 문장에 등장하는 말입니다.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흔들이지 않고...’ 이 책은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반포하기 직전인 7일 전에 한글 편찬의 책무를 맡았던 집현전 학자들이 경복궁 내에서 연쇄적으로 살인을 당하는 내용을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는 소설입니다.
물론 내용은 역사적 사실에 근거한 내용이 아니라 전적으로 저자의 상상력에 근거한 픽션입니다.
그런데 독특하게도 이 책의 저자는 세종대왕의 훈민정음, 한글 창제를 중국의 간섭으로부터 벗어나려는 조선왕조의 초 개혁적 의지의 산물로 보고자 합니다.
자기 나라의 말과 글, 그리고 그것을 표현하는 새로운 문자를 갖는 것을 저자는 천지가 개벽하는 개혁적 의지로 보고자 하는 저자의 설정은 매우 신선합니다.
세종대왕은 훈민정음의 창제를 20년 가까운 세월동안 집현전 학사들을 중심으로 조심스럽게 만들어 갑니다.
그렇지만 개혁에는 반드시 반 개혁세력이 있는 법. 이것을 저지하려는 궁내의 세력들에 의하여 집현전 학사들이 연쇄적으로 살인을 당합니다.
세종대왕이 살고 있는 경복궁 내에서 벌어지는 연쇄 살인 사건. 그것도 살인을 당하는 사람들이 세종대왕이 총애하는 집현전의 학사들이라니, 그 설정부터가 파격적이고 흥미진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게다가 이 책은 조선조 시대의 수학, 천문학, 언어학, 그리고 음악과 건축과 미술 등의 방대한 지식을 사건 해결의 고리로 연결시켜 놓고 있어 독자들과 지적 힘겨루기를 시도하고 있기도 합니다.
더구나 사건 해결을 위해 뛰어든 말단 궁궐 수비군 채윤의 활약과 열정은 독자의 손에 땀을 쥐게 만듭니다. 뿐만 아니라 이 책에는 집현전 학자들의 이름이 실명으로 등장하고 있어 독자들로 하여금 역사적 사실과 소설적 상상력의 묘미를 맛보게 합니다.
소설 후반부에는 중국 명나라를 등에 업은 반개혁파의 칼날이 세종대왕을 향합니다. 그러나 소설은 극적반전과 더불어 훈민정음 반포라는 역사적인 사건으로 끝을 맺습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향원지, 열상진원, 집현전, 경회루, 아미산, 강녕전 등 경복궁의 여러 건축물에 숨겨진 지식도 얻게 되어 한편으로는 즐거웠지만 한국 역사와 전통 등에 대한 무지를 깨닫게 되어 한편으로는 부끄럽기도 했습니다.
아마도 이 책은 누군가에 의해 영화화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어찌 보면 이 소설은 한 편의 영화 시나리오와 유사한 포맷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 동안 이 책은 한국의 현직 대통령이 읽었다는 이유만으로 여러 사람은 물론 언론의 주목을 받았던 책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책을 지나치게 개혁과 반 개혁의 시각으로 읽는 것은 너무 정치적인 시각이 아닌가 싶습니다.
누군가의 지적처럼 이미 개혁은 개혁을 부르짖는 사람들에 의하여 누더기가 된지 오래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올해는 개혁을 부르짖기 전에 역사와 현실을 냉철하게 바라보고 올바르게 판단할 수 있는 혜안이 간절히 요구된다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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