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아빠 무릎에 앉아 창밖의 구름을 신기하게 바라보면서 TV에서 본 ‘600백만불의 사나이’ 아저씨가 날 기다린다는 말에 위로를 받으며 미국에 왔었다. 그렇게 떠난 조국을 30여년 만에 방문했다.
한국을 잊지 않으시려고 흙을 담아 45년전 미국으로 건너오시다 세관에 잡히시기도 했던 나의 할아버지의 그 조국을 찾아갔다. 7년에 불과한 짧은 한국 추억을 가지고 찾아간 한국 방문은 사실 너무 늦은 감이 있었다. 하지만 기다린 세월만큼 감격은 컸다. 강산이 3번 변한 세월이었다.
설레는 마음으로 인천공항에 도착했지만 서울인구 1,300만명중 나를 아는 사람, 나를 반겨주는 사람은 단 한명도 없었다, 하지만 모두 나와 같은 한국사람이라는 사실만으로 그냥 좋았다.
나의 친구들, “데기데기 뻔, 뻔데기” 아저씨, 엿장수 아저씨, 소독약차 등 어린 시절 추억은 모두 다 떠나버리고 존재하지 않았다. 어릴적 기억의 흔적은 아무데도 없어 오히려 한국을 방문하기전보다 더 착잡한 마음이었다. 그들 모두에게 잊혀버린 존재가 되었다는 게 섭섭했다.
30년 만에 온 나의 고향 부산에서는 다행히 초등학교 1학년 때 흰머리 띠를 하고 백군 릴레이 선수로 달렸던 그 학교를 찾았다. 현재 교장선생님의 고구마와 포도 주스 대접을 받으면서 나의 짧았던 초등학교 추억을 되찾았다. 나를 업고 차가운 새벽을 깨우며 황영조 선수같이 뛰어 새벽기도를 가던 엄마의 추억, 그 어릴 적 교회도 간신히 찾았다.
내가 옛날 외우고 있던 육교 앞의 큰 표어들 - “아들 딸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 “자수하여 광명 찾자” 는 더 이상 없었다. 이젠 그 가치관과 사상도 사라진 것 같았다.
동대문 앞에서 첫눈내리는 쌀쌀한 밤 기온에도 아랑곳없이 정말 열심히 일하시는 모습들을 보면서 미국의 한인들을 생각했다. 우리 민족은 다 저렇게 치열한 경쟁 속에서 열심히 일해 살아남는 생존자와 같은 민족이라는 사실을 목격했다.
그런가 하면 한국, 서울을 세단어로 줄이면 “먹고, 마시고, 입자”였다. 그 많은 호프집들-난 HOPE(소망)로 생각했는데 사전을 찾아보니 독일말 HOF, 생맥주집이었다. 나하고는 거리가 먼 문화였다. 사람들의 삶이 외적으로는 모두 향상된 것 같지만 빈부차이가 심해서 선택된 인구 만이 더 풍요로워진 것 같았다.
이방인 같은 느낌 속에서도 난 내 민족이기에 따뜻한 정을 느끼고, 나의 정신적 유산의 한부분을, 나의 잊어버린 정체성의 퍼즐 한 덩어리를 발견한 듯한 뿌듯함이 느껴졌다.
외부 사람의 신선한 눈으로 조국을 보고 온 후 여기에서 만나는 한인 한분 한분이 저 마다 내가 한국에서 본 여러가지 모양의 과거와 삶이 있었고, 그들 개개인의 세계관과 사연들이 있기에 그들을 좀더 이해해야겠다는 성숙한 마음이 생겼다. 한국이란 좁은 땅에서 끝없는 경쟁 속에서, 기회는 모두에게 공평하게 주워진 것이 아니기에 더 열심히 공부해, 더 좋은 학교에 들어가, 더 많이 소유해서 어떻게 하던 인생의 안정을 갈망하는 열정의 민족이라는 것을 이해하게 되었다. 내게는 그 모두가 서먹하지만 그 환경에서 헉헉 거리며 쉬지 않고 일하고, 공부하며 사는 모든 사람들의 의지는 너무나 아름답게 느껴진다.
LA 공항에 도착하니 너무나 마음이 편했다. 이젠 내가 이 땅에 산다는 것이 새삼스럽게 고마워서 감사하며 기도하게 된다.
하지만 한국에 대한 추억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 또한 고맙다. 그 추억이 오늘의 나를 만들어주고 지탱해준 기초라고 믿기에 옛 추억을, 30년전 그때 그곳을, 거기 있는 모든 분들을, 그 기억을 소중히 여긴다. 나의 조국 한국이 있기에 행복하고, 이곳에서 코리안 아메리칸으로 살수 있기에 또 감사하다.
지니오
UCLA 박사과정 카운슬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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