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모목사(전 만백성교회 담임)
이 시대의 특징 3A가 있다. Apathy(무관심), Anonie(무질서), Anarchy(무정부)이다. 우리나라 말로 옮기면 3무(三無)현상이다. 즉 무관심(無關心) 무질서(無秩序) 무정부(無政府)이다. 사실상 이 셋은 하나로 통한다. 서로의 연대적 의미를 지닌 단어들이다. 개인인권은 개인주의를 발전시켰다. 나아가 개인주의의 발달은 상호간의 무간섭(無干涉)으로 ‘무관심’을 심화시켰다.
한편 무관심은 개인의 이기주의를 낳게 하였다. 무관심, 무감동의 현상은 현대인을 냉담한 존재로 만들었다. 무관심 무질서 무정부에는 책임 있는 행동이 없다.십대 청소년 외아들을 둔 어머니가 전화를 걸어 왔다. “목사님이시죠?” “그렇습니다.” “목사님, 자식이 원수입니다. 속이 상해 죽고 싶습니다.” 신경질적인 말투로 울먹인다. 하나밖에 없는 외아들이 자기 방의 문에 ‘엄마 아빠 출입금지’라고 큰 글씨로 써 붙였다고 한다. 그 밑에 작은 글씨로 ‘들어오면 나 집나간다’라고 경고문까지 써 놓았다고 한다. 부모에 대한 계엄선포다. 아빠는 저놈을 지금부터 버르장머리를 고쳐놓지 않으면 두고두고 집안의 화근거리가 된다고 하면서 노발대발하고 있다고 한다. 아들의 계엄포고문에 부모가 얏 잡혀 보이면 안 된다고 아빠는 오늘 저녁 결판을 내 놓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고 한다.
부자대란(父子大亂) 발발 1초전이라고 했다. 아들 녀석도 인상을 찢어 가면서 비장한 각오를 하고 있다.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고 하소연을 했다. 평화로운 가정이 전쟁준비에 들어갔다. 출입금지 경고문 하나만도
무언가 머리통을 얻어맞은 기분인데 집 나간다는 당당한 자세에는 엄마로서도 혐오감마저 든다는 것이다.아들은 행동의 자유와 자아의 독립선언을 한 것이다. 부모와 일대일의 존재로 독립적인 개아(個我)가 되고 싶은 것이다. 한 집안이 두 집이 된 셈이다. 간섭을 싫어한다. 지배하지 말라는 것이다. 부모의 지나친 관심에 반발을 한 것이다. 부모와의 질서가 무너졌다. 부자유친(父子有親)과 장유유서(長幼有序)가 무너졌으니 가정은 무질서와 무정부가 되었다.
물감 드린 색색머리, 절구통 바지, 배꼽 반지, 배추머리, 돌려쓴 모자, 학교등교 교부, 담배, 술, 마약, 음란물, 이성교제 등 등 간섭 말라는 것이다. 무관심하라는 것이다. 그러나 어느 부모가 가만히 있겠는가. 부모가 증오의 대상이 된 세상이다. 이것이 오늘 날 한국이나 미국 가정의 실
태다. 어른의 세계도 마찬가지다. 시골 한 동리의 흐믓한 정분은 옛 이야기가 되고 말았다. 현대인은 간섭받기를 싫어한다. 관심 가져주는 것도 싫어한다. 한 아파트 빌딩에 십 여년을 살아도 눈인사 정도로 알고 지내자는 것이 현대인의 모습이다.
신학자 하비 콕스는 이 무관심을 현대의 죄라고 단정하였다. 나와 상관없는 이야기라는 식의 사고방식이 오늘날 이 사회를 더욱 냉담하게 만들고 있다. 군중 앞에서 손을 씻은 유대의 총독 빌라도는 극단 이기주의의 대표다. 강도 만난 사람을 피하여 간 제사장과 레위인 또한 이기주
의자들이다. 플로리다의 산불이 일어났을 때 일이다. 1주일 전 산불이 남의 이야기로 들렸는데 자기 집이 전소하고 나니 무관심의 방관적 태도가 큰 죄인 것을 깨닫게 되었다는 고백을 들었다.
자식의 계엄령을 부모가 어김으로 당당하게 가출한 자녀가 한 둘이 아니지 않는가. 자식의 엉뚱한 행동을 인정해주지 않고 무시하면 곧 자기의 존재를 무시당한 것과 같은 느낌을 갖는 괴물들이 지금의 청소년들이다. 부모에게 계엄선포를 내 건 자녀에게 당분간 철저한 무관심으로 대하라고 하였다. 부모의 무관심이 얼마나 잔혹한 고문인 것을 깨달을 때 부모의 존재가 위대하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라고 귀띰하였다.
무관심은 최대의 비극이다. 아들이 무간섭을 원하는 것은 자기의 존재를 인정해 달라는 뜻으로 받아드려야 한다. 자식의 요구대로 당분간 무반응으로 대해 주는 것은 그의 존재가치를 긍정적으로 인정해 주는 결과가 됨으로 아들은 속으로 자긍심(Self Esteem)을 갖게 될 것이고 곧 부모의 관심을 끌어들이려고 애쓰는 모습을 발견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만일 조언을 무시하고 아버지의 주먹질이 터지면 자식은 가출을 할 것이고 큰 불행을 초래할 것이라고 하였다.
교회를 전혀 나가 보지 안 했다는 그 부인은 끝내 성함을 밝히지 안했다. 공짜 상담으로 근 한시간을 소모했으나 교회에 나가라는 전도의 말 한마디가 그의 가정을 구하는 유일한 복음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 부모의 무관심은 사실상 무관심이 될 수 없다. 부모의 무관심은 더 큰 관심의
표현이며 사랑의 묵약(?約)이 된다. 하나님의 심판이 더딘 이유는 하나님이 의인과 악인을 무관심한 것으로 오해하기 쉬우나 실은 그렇지 않다. 하나님은 세상을 사랑하사 교회를 통하여 관심을 나타내시고 있다. 오늘 날 교회를 통하여 그 관심은 더욱 크게 확장되고 있다. 교회는 하나님의 관심으로 가득 찬 곳이다.
자녀들이 부모를 거역하여 계엄문을 붙이지 않도록 부모는 어려서부터 자녀를 교회에 인도하여야 한다. 교회는 2세들의 인격성숙을 위하여 최대의 관심을 갖고 온갖 노력을 다 하는 곳이다. 하나님이 당신의 자녀를 얼마나 사랑하고 관심을 갖고 있다는 것은 교회에서 알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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