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늘해지기 쉬운 계절에 생각만 해도 따스해지는 소식 둘
#1 기자가 그 소문을 처음 들은 건 얼추 두달쯤 전이었습니다. 어느 분이 한국에서 선친으로부터 물려받은 유산을 정리해 무려 10만달러인가 20만달러를 자신과 가족이 다니는 교회에 남몰래 헌금으로 내놓았다는 것이었습니다.
귀가 번쩍 뜨였습니다. 이런 저런 줄을 이용해 확인에 들어갔습니다. 헌금액은 20만달러였더군요. 물론, 거액 도네이션의 주인공 신상도 파악했습니다. 그러나 그 미담기사는 끝내 탈고되지 않았습니다. 실은 쓸 수가 없었습니다. 우선 ‘그분’이 기사화되는 걸 한사코 사양했습니다. 사양이 아니라 거절이었습니다. 기사를 쓰지 못한 이유는 또 있습니다. 그런데 “그 이유는 …” 하고 속시원히 밝히지 못하는 이유 또한 있습니다. 그 교회분들이나 주변분들은 대강대강 아시는 내용이지만, 가급적 ‘조용한 선행 낮은 음자리’에 머물게 하고 싶어하는 그분의 뜻을 존중해, 그분의 직장과 직위 때문이라고만 말씀드리겠습니다.
#2 일요일이면 가끔 사찰을 돌아가며 불교계 움직임을 취재해온 기자가 어느 사찰에서 ‘또다른 그분’을 만난 것은 의외였습니다. 그분은 지지난해(04년)까지만 해도 한인사회 대표단체의 회장이었습니다.
그분 임기말에 그 단체 회장을 뽑는 선거가 있었고, 이를 관리하는 선거관리위원회가 공금처리와 관련해 비판대에 올랐습니다. 그 사이 그 회장의 임기는 끝났습니다. 선관위 비판의 수위는 더욱 높아졌습니다. 그때 그 회장이 나섰습니다. 공개 기자회견을 통해 자신의 관리책임을 인정하며 총체적 사과를 했습니다. 무슨 일이 터지면 흔히 하는 말로 ‘회장의 무한책임’을 들먹일 수는 있겠지만, 책임과 의무 관계가 체계적으로 정립되지 않은 한인사회 관행에 비춰 회장이 선관위의 과오에 대해 임기가 끝난 뒤에, 그것도 회견 형식으로 자신의 종아리를 걷어올린 건 큰 용기였습니다.
앞장서 비판기사를 썼던 기자로서는 적어도 그 부분에 대해서는 일정한 평가를 했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한 상태에서 1년반 이상 지나버린 상태, 그런데 그분이 부인과 함께 위기에 처한 어느 사찰 사람들(스님들과 신도들)의 새 둥지를 주선하는 등 앞장서 뛰고 있는 것을 알았으니, 더욱 남다른 감회를 느낄 수밖에 없었지요. 그분과 부인의 비즈니스 성격상 불교마을 사람들을 돕는다는 건 아니할 말로 ‘손님 떨어지는 위험한 일’인지도 모릅니다. 그런데도 두 분은 지금도 부지런히 발품을 팔고 있습니다.
#3 두 갈래 사연 못지 않게 뒤끝 좋은 사연이 있습니다. 교회에 선뜻 거액을 희사하고 숨겨온 <그분(집사)>, 자신의 입김이 닿을 수 없는 독립적 하부단체의 잘못을 ‘함께 그리고 대신’ 사과해 비판의 화살을 나눠받고 혹시 있을지도 모를 비즈니스상 손해 가능성에 개의치 않고 어느 사찰 자리잡기를 위해 동분서주해온 <또다른 그분(처사)>이 실은 북가주에서만 30년가량 우정을 나눠온 둘도 없는 친구랍니다.
지연 학연 혈연 등 제법 끈끈하게 얽힌 사이에서도 사사로운 일로 등을 돌리는 일이 많다는데 두 사람은 고향 다르고 출신학교 다르고 가문은 말할 것도 없고, 거기다 종교까지 판이하게 다른데도, 30년 우정을 지켜왔고 앞으로도 간직해갈 것이라고 합니다.
<정태수 기자> tsjeong@koreatimes.com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